피해자 증언 및 목격담 등 쏟아져…해당 여성 “사실무근, 사이버 폭력 피해자” 억울함 호소
발단은 32세 양 아무개 씨의 자기소개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었다. ‘양 씨가 소개팅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을 유혹해 다단계 판매 회사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개팅 사이트는 광둥 지역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양 씨는 즉각 “사실이 아니다. 댓글을 단 사람을 모른다”고 반박하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이후 양 씨에 대한 폭로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여기엔 양 씨의 학교 동문, 친구 등 지인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양 씨가 대학교 석사과정을 마친 2019년경부터 지금까지 T 사라는 다단계 팀에서 활동했다고 증언했다. 오프라인에서 양 씨를 통해 이 다단계 판매 일당을 알게 됐다는 사람들만 25명에 달했다. 한 제보자는 “양 씨가 석사까지 마친 재원이라는 점 때문에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양 씨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다양했다. 우선 고등학교 동문들이 최우선 포섭 대상이었다. 이성과 SNS(소셜미디어)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다 만나거나 앞서 사례처럼 소개팅 사이트를 이용하기도 했다. 다단계 피해자 중엔 양 씨가 주로 다니던 은행 직원도 있었다.
양 씨의 자기소개 글에 댓글을 단 인물은 닉네임을 ‘무슈’로 쓰는 남성이었다. 그는 양 씨보다 먼저 다단계 팀에 속해있었다고 했다.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무슈는 개인 자금을 투자했다. 그 결과 T 사의 고위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무슈에 따르면 T 사는 ‘창업’ ‘성공’ 등의 아이템으로 사람들을 모았다. T 사는 이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교육을 시켰다. 전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데리고 나가 T 사의 영업방식을 세뇌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제품을 회사로부터 구매한 뒤 팔아야 했다. 다단계 판매였던 셈이다. 피해자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다.
무슈는 T 사의 실체를 알게 된 2019년 12월 어렵게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무슈는 T 사의 신입사원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때 강연을 들은 신입사원 중 한 명이 양 씨였다는 게 무슈의 주장이다.
무슈는 “자기소개를 보고 단 번에 양 씨임을 알아봤다. 학력을 비롯한 모든 경력이 양 씨와 일치했다”면서 “확인해보니 양 씨가 입사했던 2019년 12월 이후 여전히 T 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썼다. 이어 무슈는 양 씨를 향해 “네가 말하는 국제무역이라는 게 다단계 판매가 아니고 무엇이냐”라면서 “다단계 판매로 인해 고통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속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소개팅 사이트 관리자는 양 씨에게 이 댓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그러자 양 씨는 “다단계 판매는 엄연한 불법이다. 내가 다단계 판매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렇게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양 씨를 T 사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마 아무개 씨는 양 씨와 대학원에서 함께 석사 공부를 했던 사이다. 마 씨는 2021년 6월 양 씨 초대를 받아 T 사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그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볼링모임, 저녁만찬, 노래방 회식 등에 갔다. 마 씨는 비용이 전혀 없다는 게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친구의 초청이라 흔쾌히 응했다.
2021년 11월 양 씨는 마 씨에게 광저우에서 4일 동안 열리는 투자 유치 설명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엔 4250위안(82만 원)을 내야 했다. 마 씨는 망설였지만 양 씨를 믿고 참석했다. 설명회 일정은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었다. 말이 투자 설명회였지 다단계에 불과하다는 걸 마 씨는 알아챘고, 이날 밤 T 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물론, 투자 설명회 비용은 돌려받지 못했다.
양 씨가 T 사 교육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음성도 공개됐다. 양 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할 때마다 무대 아래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양 씨가 T 사의 한 행사장에서 다른 멤버들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도 나왔다.
주 아무개 씨는 양 씨가 거래하던 은행의 매니저였다. 양 씨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주 씨에게 “돈을 벌게 해 주겠다”며 접근했다. 평소 양 씨의 돈 씀씀이를 부러워했던 주 씨는 이를 믿었고, T 사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양 씨의 화려한 생활이 빈껍데기라는 것을 알아챘다. 주 씨는 “외출할 때 그럴듯하게 꾸미고 나가지만 정작 방에는 팔리지 않는 T 사 제품들이 쌓여있었다”고 주장했다.
여러 증언과 제보가 나왔음에도 양 씨는 다단계 판매 혐의를 부인했다. 양 씨는 “나는 이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것”이라면서 “내 삶은 힘들어졌고, 주변과 가족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양 씨는 소개팅 사이트 담당자의 해명 요구에 “만약 그들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면 공안에 왜 고소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양 씨는 일부 무리들이 자신을 상대로 ‘사이버 폭력’을 가하고 있다면서 관련 법 조항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양 씨는 “소개팅 사이트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인신공격”이라면서 “내가 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공격을 받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양 씨가 올린 자기소개 글은 삭제된 상태다.
시장감독관리국, 공안국 경제범죄수사국 등에 따르면 T 사는 다단계 판매 행위로 조사를 받았거나 실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는 곳이다. 양 씨가 T 사에 근무했던 게 사실이라면 최소한 다단계 판매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양 씨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실제 일부 피해자가 양 씨를 공안에 신고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입건이 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형법에 따르면 다단계 판매 조직을 사법처리하기 위해선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다단계 판매 조직 구성원이 3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검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황화 변호사는 “다단계 판매 조직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일당 30명 이상을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부터 수사가 막힌다. 또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갖고 있는데, 은밀하게 이뤄지는 다단계 활동상 이 역시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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