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일가 개인회사 통해 수백억 가치 지분 매입 등 최씨 일가 압박…고려아연 “공식 입장 없다”
고려아연은 지난 12일 장형진 회장의 개인회사 에이치씨가 지난 3월 13일부터 4월 28일까지 고려아연 지분 4만 4591주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종가 기준 218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로써 에이치씨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지난 1분기 말 0.06%에서 0.32%로 0.26%포인트 증가했다.
고려아연을 두고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지분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장씨 일가의 이번 지분 매입이 최씨 일가를 압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 최씨 일가도 지분 매입에 나섰지만 3845주에 불과했다. 지난 21일 종가 기준 18억 원 수준으로 에이치씨의 지분 매입 규모에 크게 못 미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씨 일가가 지분 경쟁에서 불리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금도 고려아연 지분율만 보면 장씨 일가가 31%를 웃도는 지분율로 15% 수준에 그치는 최씨 일가를 크게 앞선다.
그러나 지난해 최씨 일가의 우호세력으로 평가받는 주주들이 대거 편입됐다. 이들의 지분율은 13% 수준이다. 최씨 일가와 우호 지분을 합하면 장씨 일가와 지분 격차가 5% 미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8% 지분을 들고 있는 국민연금이 최씨 일가의 손을 들어주면 경영권은 최씨 일가가 차지할 수 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우선 최씨 일가가 지난해 편입한 우호세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주가 관리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주가는 하향세다. 지난해 68만 원대까지 오른 고려아연 주가는 48만 원선까지 내려왔다. 최씨 일가의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LG화학은 지난해 11월 고려아연 자사주 39만 1547주를 매입하고 자신의 자사주 36만 7529주를 고려아연에 매각했다. LG화학이 매입한 고려아연 주식의 1주 가격이 65만 8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손실률은 25%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들 주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가려면 고배당 정책이 절실하지만 이는 오히려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장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는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 26.11%를 쥐고 있어서다. 고려아연이 배당을 실시하면 전체 배당금의 26.11%는 영풍의 몫이 된다.
특히 영풍이 수취한 고려아연 배당금은 익금불산입 대상이 돼 세금 감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법인세법에 따르면 피출자법인에 대한 출자비율이 20~50%에 해당하면 익금불산입률은 80%다. 이 때문에 영풍이 고려아연을 통해 확보한 수입배당금의 80%는 배당소득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배당소득 과세표준 최고 구간(10억 원 이상)에 45% 배당소득 세율을 부과하는 점을 감안하면 큰 폭의 세금 감면 혜택을 보는 셈이다.
반면 최씨 일가는 대부분 고려아연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 배당을 받더라도 배당 소득이 10억 원을 넘기면 소득세 45%를 내야 한다. 같은 금액을 배당금으로 받더라도 최씨 일가가 불리한 것이다. 고려아연이 실시한 배당총액을 보면 2020년 2651억 원, 2021년 3534억 원, 지난해 3972억 원 등으로 꾸준히 늘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풍을 장악하고 있는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 지배력을 높이기 유리한 구조다.
장씨 일가는 에이치씨와 같이 지배력이 확고한 회사를 통해 고려아연의 지분을 집중 매입하고 있다. 피출자법인에 대한 지분율이 낮더라도 이중과세를 막기 위해 배당수입금에 대한 익금불산입률 30%를 적용받을 수 있다.
장형진 회장의 자녀 개인회사인 씨케이도 보유하고 있던 영풍의 지분을 정리해 대거 현금을 마련해뒀다. 씨케이는 지난해 9월부터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을 꾸준히 정리해 기존 9.18%에서 6.46%로 지분율을 낮추고 300억 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후 씨케이는 지난 1~2월 간 고려아연 지분 2379주를 매입했다.
장씨 일가 지배력이 확고한 코리아써키트와 테라닉스도 지난해 각각 319억 원, 299억 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코리아써키트는 지난 1월에도 262억 원 규모의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코리아써키트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은 0.52%까지 상승했고, 테라닉스의 고려아연 지분은 0.36%로 상승했다.
최씨 일가도 자신의 지배력 아래 있는 법인을 통해 지분을 매입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하는 등 자본조달이 상대적으로 원활하지 못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영풍정밀은 지난해 11~12월에 걸쳐 500억 원 가까이를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매입자금은 자기자본을 활용했다. 유미개발은 지난 2월 604억 원을 차입해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차입을 위한 담보물은 고려아연 주식 15만 4062주다. 해주최씨준극경수기호종중도 지난 2월 175억 원의 차입금을 동원해 200억 원 규모의 고려아연 지분을 매입했다. 담보물은 고려아연 지분 4만 2518주 규모다. 이들의 차입 기간은 모두 6개월로 오는 8월 만기가 예상되는데 최근 주가가 20%가량 하락한 상황이라 대출을 연장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최씨 일가는 개인을 통해서도 지분 매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지분 매입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모습도 보인다. 최창걸·최창영·최창근 명예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보수를 챙기고 있어 뒷말(관련기사 매년 수십억 챙긴다고? 고려아연 ‘명예회장들 보수’ 뒷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창걸 명예회장과 최창근 명예회장은 지난 1분기 각각 5억 2000만 원, 6억 원을 보수로 챙기면서 사상 처음으로 역대 1분기 기준 1인당 보수액 5억 원을 돌파했다. 이 기간 고려아연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각각 5%, 48% 감소한 터라 비판의 시각도 나왔다. 특히 같은 기간 11명의 등기이사 보수 총액이 7억 5926만 원으로 전년 8억 6285만 원 대비 12% 감소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최창근 명예회장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 고려아연 지분 2000주를 매입하기도 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향후 고려아연을 두고 최씨 일가와 장씨 일가 사이에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최대주주 영풍을 지배하고 있는 장씨 일가 쪽으로 힘이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현재 오너 일가의 지분 경쟁에 대해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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