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정계 입문, 아베 전 총리와는 오랜 정적…기시다파와 고이즈미 세력 표 받아 결선서 역전극
#이시바 시게루는 누구?
1957년생인 이시바는 돗토리현 지사를 역임한 이시바 지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게이오대학을 졸업한 후 은행원을 거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다나카의 가르침은 정치인 이시바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시바는 “다나카 파벌 사무소에서 잡무를 하며 ‘정치는 발품을 파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일례로 “이시바의 부친이 사망하자 다나카는 ‘장례식에 온 3500명의 돗토리 사람에게 명함을 들고 인사를 돌아라. 이것이 선거의 기본’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986년 이시바는 자민당 공천으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며, 당시 최연소인 29세의 나이로 초선에 당선됐다. 이후 12선, 총 38년의 정치 경력을 쌓았다.
1993년에는 정치개혁 법안을 둘러싸고, 야당이 제출한 미야자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해 자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탈당 후 신생당 신진당을 거쳐 1997년 다시 자민당으로 복당했다. 2002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해 방위상, 농림수산상을 역임했고, 당내에서도 정무조사회장, 간사장 등 요직을 지냈다.
아베 전 총리와는 오랜 정적 관계였다. 아베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터라 자민당 내 ‘아베파’가 주류였던 십수 년 동안은 ‘찬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각에서는 “각료 경험이 풍부하고 안보정책에 정통하다”라는 평가를 받는 한편, 강성 보수층 사이에서는 “툭하면 뒤에서 총질한다”라는 싸늘한 평가도 나온다.
#군사·철도 오타쿠로 유명
이시바의 정치적 성향은 온건한 우파로 분류된다. 특히 역사문제,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비교적 온건한 목소리를 내왔다. 공개적으로 태평양전쟁을 일본의 ‘침략전쟁’이라고 지적하며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한국에서) 납득을 얻을 때까지 서로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참배하지 않았다.
풍채만 보면 완고하고 강퍅할 것 같지만, 부드러운 말투의 소유자다.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도 곧잘 출연해 국민적 인지도가 높다. 술은 좋아하지만, 술자리는 싫어해 피하는 편이다. 의원 집무실에는 책장에 다 담을 수 없는 전문서적 등이 책상이나 선반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고 한다.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선 ‘공부하는 의원’으로 통한다.
취미도 다채롭다. 일본 정계에서 손꼽히는 ‘안보 정책통’인 데다, 전투기와 군함 장난감을 조립하는 것이 취미라 ‘군사 오타쿠’라 불린다. 또한 ‘철도 오타쿠’라는 점도 공언하고 있다. 먼 곳으로 출장 갈 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반드시 철도를 이용한다. 과거 “인기 아이돌그룹 ‘캔디즈’의 팬이었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고,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작품부터 만화까지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요리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카레다. 일본 라멘(라면) 문화 진흥을 목표로 하는 의원 연맹의 회장도 맡아 전국 각지에서 라면을 먹고 다니며 스스로 “진흥을 도모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결선투표에서 역전한 이유
오랜 기간 자민당에서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고, 의원들과의 교류에도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하다’는 점이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이로 인해 당초 “국회의원 표 확보가 결정적인 결선투표에 갈 경우 이시바가 불리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시바는 결선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63)을 21표 차로 누르고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이끌었던 옛 기시다파 소속 의원들과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43) 지지 세력이 결선투표에서 이시바에게 표를 던진 것이 역전극에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가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과는 정책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선에서 이시바 쪽에 투표하라는 의사를 파벌에 속했던 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이 불법 정치자금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가운데 ‘다음 총선의 얼굴로 쇄신감 있는 총재’를 원하는 여론의 목소리가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논평했다. “극우 이미지가 강한 다카이치보다는 중도 성향인 이시바가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마이니치신문도 이시바가 결선에서 역전한 배경에 대해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강성 보수인 다카이치를 ‘선거 얼굴’로 내세우면 중도층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원들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지나치게 보수 색채가 짙은 다카이치가 총리가 되면 외교 관계가 불안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다카이치는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계속 참배하겠다”는 의향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차기 총선 승리가 최대 과제
다만 아베 노선을 계승한 다카이치가 1차 투표에서 앞섰고 결선에 올랐다는 점에서 여전히 자민당 내 아베 파벌 영향력이 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에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이시바가 원하는 정책을 마음대로 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도쿄신문은 “이시바의 최대 과제가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라고 짚었다. 차기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단명 정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시바는 “가능한 한 빨리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중의원 해산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일본 정계에서는 “이시바가 조기에 총선을 치러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를 토대로 비주류에서 벗어나 당내 기반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이시바는 “당 집행부, 내각 인사 결정에 파벌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책적으로는 기시다 정권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총리로 지명되는 10월 1일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계획이라 향후 발표될 내각 명단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총재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격론이 뜨거웠다. “후보들 가운데 그나마 이시바가 가장 나았다” “어려운 정권 운영이 예상되지만 노력해주길 바란다” 등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일본은 끝났다’ ‘이시바 쇼크’ 등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 부정적인 반응을 대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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