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가 2022년 사고 이후 SPC그룹 전 계열사에 대해 기획 감독 활동을 벌여 수백 건의 법·규정 위반사항을 적발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는 노후한 설비 문제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거의 개선된 것이 없다는 호소가 터져 나온다. SPC는 당시 약속한 안전강화 투자금을 당초 계획보다 빠르게 집행했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자들은 해당 투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22년 10월 SPL 평택 공장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SPC그룹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획감독을 벌인 결과 12개 계열사 사업장 52곳 가운데 45곳에서 총 277건의 법 위반 사항을 확인, 과태료 6억여 원을 부과했다. 이들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위험 기계 중 자율안전확인신고를 하지 않은 식품혼합기 40대, 컨베이어 1대 등 총 44대에 대해 사용 중지 처분도 내렸다.
당시 확인된 법 위반사항 277건은 △안전보건교육 미실시(37건·13.4%) △기계·기구 위험예방 미조치(36건·13%) △관리감독자의 역할 등 안전보건관리체제 및 안전보건관리규정 부적정(27건, 9.7%) △출입구·비상구 등 작업장 환경 미흡(21건, 7.6%) 순으로 많았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등을 선임하지 않은 경우 선임했더라도 다른 업무를 수행하거나 업무를 소홀히 한 경우도 지적받았다.
지난 28일 ‘일요신문i’가 SPC그룹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SPC그룹은 2022년 10월 말부터 올해 4월까지 총 916억 8000만 원을 안전경영 투자금으로 집행했다. 세부 항목으로 보면 안전설비 확충 및 장비안전성 강화에 408억 3000만 원, 설비 자동화에 252억 6000만 원, 작업환경 개선에 204억 4000만 원, 기타 51억 5000만 원 등을 투자했다.
SPC 측은 이달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계열사 SPC삼립에도 200억 원이 넘는 돈이 안전 강화를 위해 투자했다고 밝혔다. SPC그룹 관계자는 “1000억 원의 투자 금액 중 SPC삼립에 234억 2000만 원을 집행했다”며 “SPC삼립의 산재 건수는 2023년 19건에서 2024년 7건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시 숨진 노동자가 뜨거운 빵을 식히기 위한 냉각 컨베이어벨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윤활유를 직접 뿌리기 위해 벨트 밑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컨베이어 벨트는 본래 윤활유 자동살포장치가 설치돼 있는 기계로, 당시 노동자가 왜 직접 기계 아래 들어가 윤활유를 뿌리려 했는지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기계 아래로 들어가야 할 경우 안전 규정상 기계 작동을 먼저 멈춰야 하는데 당시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짚으며 안전 관리 부실 소지를 제기하고 있다.
현재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일요신문i’에 “2022년 고용노동부의 기획감독에서 수많은 위반 사항이 발견된 이후 제대로 조치가 이뤄졌다면 이번 사고는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12시간 근무, 주야간 맞교대 시스템 등 고강도 근무 방식도 (직·간접적) 사고 요인의 하나로 지적돼왔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업이 안전 강화를 위해 1000억 원을 투자했다지만 노동조합 등 근로자 대표나 시민사회단체 등이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절차 없이 깜깜이로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등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누적된 사고에 대해 허영인 SPC 회장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1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SPC그룹 총수인 허영인 회장까지 책임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이번 사고에 반드시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세호 SPC 대표이사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긴급간담회에 참석해 “2022년 SPL에서 발생한 사고 이후 전 계열사가 안전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며 무엇이 부족했는지 실패의 원인을 면밀히 성찰하고 있다”며 “그동안 추진한 안전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설비·안전장치 개선, 안전 중심 시스템 혁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