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NPE 팬텍이 7월 3일 중국의 레노버를 비롯해 티씨엘 인더스트리, 티노 모바일, 원플러스 테크놀로지와 핀란드의 에이치엠디 글로벌 등을 상대로 미국 텍사스 동부 지방법원에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계열사까지 포함해 피소된 기업 수만 총 17개 회사에 달한다.
분쟁 특허는 LTE 및 5G 관련한 4건으로 △랜덤 액세스 채널(RACH) △상향 링크 동기화(Uplink Synchronization) △하이브리드 자동 재전송 요구(HARQ) 표시 채널 매핑 등 네트워크 접속 및 신호처리 전반에 걸친 기술을 포괄한다. 이 특허 기술을 적용하면 단말기가 기지국에 접속할 때 충돌을 최소화해 접속 성공률을 높일 수 있고 이동 중인 단말기의 송수신 타이밍을 빠르게 동기화해 데이터 전송 지연을 줄이고 연결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복수의 사용자 간 신호 충돌을 최소화할 수 있어 대용량 데이터 통신 환경에서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특허들은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에 의해 SEP으로 지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SEP는 국제 표준 규격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에 부여된 특허다. 해당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규격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일반 특허에 비해 침해 입증이 용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선 통신 네트워크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전송을 가능케 해야 하므로 글로벌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ETSI에서 선언된 SEP은 휴대전화 제조사들에게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 특허 없이는 사실상 LTE와 5G 스마트폰을 제조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랜덤 액세스 채널(RACH), 상향 링크 동기화, HARQ 기술 등은 모든 LTE·5G 단말기에 기본적으로 구현돼야 하는 필수 기능으로, 이는 자동차를 만들 때 바퀴나 엔진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회피설계가 거의 불가능한 SEP의 특성 상, 특허권자는 누구에게나 무료 또는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건(FRAND)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소장에 따르면 팬텍은 피소 기업들 역시 ETSI에 가입한 회원사로서 FRAND 조건에 따른 라이선스 계약에 성실하게 협상할 의무가 있으나 협상을 반복적으로 지연시키고 연락에 응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왔다고 주장했다. 팬텍 측에서 여러 번 라이선스 협상을 제안하고 특허 목록, 기술 내용, 연관성 등을 설명한 자료를 전달했으나 무응답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이에 팬텍은 손해액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함께 요구했다.
공앤유특허사무소 공우상 대표변리사는 “경고장이나 내용증명 보냈는데 그 후에도 상대가 판매하고 있으면 고의성은 인정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경고장 보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특허권자가 피소 기업에 얼마나 자료를 제공했는지, 상대가 실제 사용 중인 기술과 표준특허 기술을 정확히 비교해 제시했는지 등을 법원에서 중요하게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며 “피소 기업 입장에서는 표준 기술과 구별할 만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라이선스 제안에 응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려고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팬텍은 지난 7월 3일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피고들을 대상으로 국제무역위원회(ITC)에도 소를 제기한 것으로 확인된다. ITC 소송은 지방법원보다 진행 속도가 빨라 대개 10개월에서 1년 3개월 내 종결된다. 팬텍은 피고가 제조한 LTE·LTE‑A·5G 규격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태블릿 및 노트북 등과 관련해 LEO(제한적 수입금지명령) 및 판매중단 명령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민흥 와이즈업 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ITC는 비교적 신속하게 제품의 수입 금지 여부를 판단해주기 때문에 피소 기업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법원에서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과정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정보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ITC 제소를 통해 속전속결로 판단을 구한 후 합의 종결 등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팬텍은 과거 휴대폰 제조사였던 팬택의 후신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 수익화 전문기업(NPE)인 아이디어허브의 100% 자회사다. 현재 팬텍은 통신, 스마트 디바이스,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천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무선 통신 기술 분야에서만 미국 내 등록 특허가 200건 이상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핵심 기술 다수가 SEP로 강력한 IP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팬텍은 연간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지속적으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팬텍은 LTE, 5G 등 표준 특허를 기반으로 글로벌 특허풀인 아반치, 시스벨 등에도 특허권자로 가입하고 10여 개의 글로벌 ICT 기업과 개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흥 변리사는 “아이디어허브가 과거 팬텍의 지식재산권(IP)을 전면 인수해 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해당 자회사를 통해 꾸준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라이선스 협상이 무산될 경우 소송을 통해 압박을 가하고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며 “팬텍은 지금 라이선스 실적이 좋다. 과거 팬택 시절 보유하고 있었던 양질의 특허들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팬텍은 6월 24일, 자사의 SEP을 침해했다며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도쿄지방법원으로부터 구글의 스마트폰 Pixel 7 시리즈에 대한 판매금지 명령을 포함한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일본 사법 역사상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제품 판매가 금지된 첫 사례다.
법원은 구글이 FRAND 조건에 다른 협상을 거부하고 비협조적이고 불성실한 태도로 라이선스를 회피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Pixel 7 시리즈 제품의 일본 내 판매, 전시, 양도 및 수입이 모두 금지됐으며 구글은 소송비용 전액도 부담하게 됐다. 팬텍은 Pixel 8과 Pixel 9 시리즈에 대해서도 도쿄지방법원에 판매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으며, Pixel 시리즈 전체를 대상으로 한 수입금지 조치도 일본 세관에 요청한 상태다.
팬텍의 모회사인 아이디어허브는 최근 굵직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아이디어허브는 지난 2월 미국 자회사 임버라텍을 통해 애플을 상대로 반도체 관련 특허 소송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자회사 에이엑스 와이어리스를 통해 네트워크 통신 특허 침해 혐의로 소니와 프랑스 기업 밴티바를 제소했다. 아이디어허브는 2020년 팬택으로부터 1400여 개의 특허를 사들이는 등 현재까지 보유한 특허만 6000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우상 변리사는 “아이디어허브는 국내 최초로 상장까지 도모하고 있는 NPE다. 상장을 앞두고 실적을 만들고 있는 추세인 것으로 보이고 또 점점 소송 노하우가 쌓이면서 요새 부쩍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국내 최초 NPE인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와 쌍벽을 이루는 회사인 만큼 아이디어허브의 행보가 국내 NPE 시장 전체의 방향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