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담조직 신설, 경제·안보적 대안으로 주목…쇄빙선 등 추가 비용 드는 데다 환경오염 우려도
[일요신문]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의 핵심 거점화 구상과 함께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북극항로 개척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북극해를 관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이 항로는 운항 거리 단축과 물류비 절감 효과로 인해 미래 해운물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가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정책과 인프라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나 정작 해운업계에서는 회의론이 대두된다.
북극항로 개척이 주목받고 있다. 항행 중인 HMM 선박. 사진=연합뉴스#‘꿈의 항로’ 북극항로 개발 기대감에 들썩
북극항로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운항 거리 단축이 꼽힌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의 항로를 예로 들면, 기존 수에즈 운하 경유 시 약 2만 km였던 거리가 북극항로 이용 시 1만 3000km 수준으로 40% 가까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물류비 절감 효과는 물론 전체 운송 기간의 축소로 선박 회전율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6월 27일 경기도 성남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북극항로 개발에 대해선 ‘시의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양 부회장은 “지금 당장 북극항로에 컨테이너선 정기항로가 개설되긴 어렵겠지만 5~10년 후를 생각하고 개발할 경우, 부산이 가장 많은 수혜를 입게 될 것이다. 부산이 싱가포르와 같은 허브항만으로 거듭나려면 지금부터 이에 대비한 투자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대표변호사(한국해운물류협회 부회장)는 북극항로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도 긍정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열린 세계해법회 도쿄총회에서도 북극항로가 주요 주제로 다뤄졌을 만큼 관심이 크다”며 “운항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만큼 연료비가 절감되고 화주들의 운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도 항로는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수에즈 운하 등 기존 항로가 지정학적 긴장으로 봉쇄될 경우 실질적인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극항로의 경제·안보적 가치 또한 주목받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동중국해에서는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은 조기 종식됐지만 수에즈 항로 등은 중동 정세 불안으로 언제든 차단될 우려가 있다. 이 경우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는 것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다”며 “장기적으로 북극항로 개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국내 컨테이너 선사들의 북극항로 참여를 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당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제재 여파로 본격적인 개발은 어렵지만, 북극항로 관련 정책 방향 설정과 컨테이너 선사 지원은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의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중국 컨테이너선들이 이미 북극항로를 오가는 사례도 있어 저희도 국내 선사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 참여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를 못 박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사진=이종현 기자#북극항로, 매력보다 리스크 크다?
북극항로를 두고 컨테이너 해운업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감지된다. 우선 정기 노선 운항이 핵심인 컨테이너 해운업에는 북극항로가 얼음이 녹는 하절기에만 열리는 계절항로라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한계로 꼽힌다. 컨테이너 해운업은 버스나 기차처럼 항로를 정해놓고 정해진 요일에 선박이 반복적으로 출항하는 정기선 서비스를 운영해야 하는데 북극항로를 통해서는 정기적인 스케줄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극한의 기후 조건 탓에 고부가가치 화물 운송에 부적합해 수익성을 내기도 쉽지 않은 노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북극이 아무리 바다가 얼지 않는다고 해도 영하 수십℃에 달하는 항로를 장시간 항해하면 컨테이너 박스가 얼지 않겠느냐. 그 안에 있는 화물들도 손상될 위험이 크다”며 “정밀 기기나 고부가가치 화물은 사실상 운송이 어렵고 화주들도 싣지 않으려 할 것이다. 수익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노선”이라고 말했다.
북극항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극지 운항이 가능한 고사양 선박 증축도 요구돼 추가 비용이 든다. 유빙에 부딪혀도 견딜 수 있도록 선체를 고강도 강판으로 설계한 특수 선박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해 국제적으로는 ‘폴라코드(Polar Code)’라는 별도의 운항기준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 얼음을 깨며 항로를 열어주는 러시아 쇄빙선의 에스코트 비용과 도선사, 항만 이용료까지 추가해야 한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아무리 얼음이 녹는다고 하더라도 얼음이 어는 기간이 아예 없어지지는 않는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쇄빙선을 붙여야 하고 반드시 도선사도 태우게 돼 있다. 그러면 벌써 하루에 소요되는 비용이 1억 원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북극해를 인도양 지나가듯이 24~25노트로 달릴 수는 없다. 10~12노트 수준으로 항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거리가 짧은 것도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북극항로에는 등대와 항로 표지 같은 기본적인 항만 지원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장거리 항로인 만큼 기상이 악화하거나 사고 발생 시 대피할 항만이나 연료 보급지 등도 필수적이지만, 현재로서는 미비한 상태다. 인프라를 새롭게 설치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항로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러시아가 고액의 통행료 등을 부과할 가능성도 높다. 해운업계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우리 해역에 들어오는 선박에 등대 사용료를 받듯, 러시아 역시 자체 인프라에 대해 높은 요금을 책정할 것이다. 이미 여름철 한정 운항임에도 북극항로 이용료는 기존 항로 대비 5~15% 이상 비싸다”고 설명했다.
기존 항로처럼 중간 기항지를 오가며 선적과 하역을 반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도 북극항로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북극항로에는 중간 기항지가 거의 없고, 대형선이 운항하기엔 수심도 얕아 HMM(옛 현대상선) 같은 글로벌 정기 선사가 운항하기엔 쉽지 않다. 버스가 정류장마다 정차해 손님을 내리고 태워야 돈을 버는 것처럼 HMM은 여러 항만을 순차적으로 기항하면서 다양한 화물을 선적·하역해야 채산성이 맞는데 북극항로는 이런 운영 자체가 어렵다”며 “오히려 운항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화물이 집중된 항로를 선택하는 것이 선사 입장에선 훨씬 수익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환경오염 논란 역시 컨테이너 선사가 넘어야 하는 산이다. 쇄빙선 운항이 북극곰과 혹등고래 등 북극 생물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배출하는 블랙 카본이 햇빛과 접촉하면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해부터 북극해를 운항하는 선박에 중유 사용 및 운반을 금지했다.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면 운반비용이 증가한다. 세계 1위 글로벌 선사인 스위스의 MSC와 세계 3위 선사인 프랑스의 CMA CGM은 환경 문제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위 선사인 덴마크의 머스크 역시 2018년 북극항로 시범 운항 이후 비용 절감 한계 등의 문제를 들어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서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해운업계에서는 넷제로(탄소중립) 조기 달성 목표를 내걸 정도로 환경 보호가 핵심 과제인데 북극항로 이용은 오히려 생태계 파괴와 직결돼 ESG 경영 흐름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원양 컨테이너선사들 입장에서 볼 경우 북극항로가 0에 수렴할 정도로 매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종길 교수는 “북극항로가 우리의 미래인 것처럼 달려들면 러시아는 ‘봉 잡았네’라고 느낄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가 긴밀하고 패권국가이기 때문에 비용을 치르더라도 북극항로를 탐색할 이유가 있지만 우리는 그럴 이유가 없다”라며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끄럽게 북극항로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얼음이 얼마나 녹고 항로가 어떻게 열리는지를 조용히 관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교수는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건 북극항로가 아니라 신남방항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와 인도, 중동,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물류 거점을 확보하고, 이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력해 전용 항만과 물류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바탕으로 타국의 생산품을 부산항을 통해 북미로 수출하거나 역으로 수입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HMM 쪽에 입장을 물었으나 “현재 공식적으로 수립된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
HMM 부산 이전 효과 두고 설왕설래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이 실제로 진행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발 기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HMM 부산 이전 효과 설명하는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 사진=연합뉴스익명을 원한 해운업계 내부 한 관계자는 “HMM의 국내 매출 비중은 전체의 10~15% 수준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수익은 해외에서 발생한다. 서울 본사에서 전세계 항만 컨트롤과 네트워크 관리, 재무·영업·화주 대응 등 핵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부산으로 갈 경우 글로벌 경쟁사 대비 업무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지난 7월 14일 펴낸 ‘HMM 본사 유치 경제효과 및 유치전략’ 보고서에서는 HMM 부산 이전으로 2만 1300명의 고용유발효과가 생길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HMM이 부산에 50층 규모 지능형 건물을 건축할 경우 생산유발효과 1조 3000억 원과 부가가치유발효과 5179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부산상의는 ‘지난해 위촉한 정책자문단 소속 위원을 통한 연구용역’이라며 연구 주체는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누가 썼는지 밝히지도 못하는 보고서에, HMM의 경우 전세계 임직원 수가 4000명이고 서울과 부산을 더해도 1200명 수준인데 부산 이전 후 5년간 2만 명이 넘는 고용이 창출되리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허황되다. 서울에서 9개 층만 사용하는 회사가 부산에서 50층짜리 본사를 지을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HMM 육상노동조합 역시 지난 6월 4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HMM 노조는 “기업의 지방 이전은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검토돼야 할 사안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정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게 HMM 본사가 부산에 있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라며 “이미 부산 일선 현장에 운항·항만과 관련된 필수 임직원들이 근무 중이므로 북극항로 개척 측면에서의 이전 역시 본사가 부산에 있어야만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협업 조직을 부산에 구축하는 방식도 충분히 고려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준우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영업·재무·마케팅 등은 수도권에 남기고, 선박 운항·관리 기능만 부산으로 분산하는 현실적 절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세창의 김현 대표변호사(한국해운물류협회 부회장)는 “모든 경제활동이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본사를 단독으로 부산으로 이전하면 부산 경제 활성화는커녕 HMM의 경쟁력만 크게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