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3월 10일 221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407개 하청 노조(약 8만 1600명)가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교섭 요구사실을 공고하고 절차에 착수한 사업장은 △한화오션 △포스코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 △부산교통공사 △화성시 등 5곳에 그쳤다. 같은 날 노동위원회에는 교섭단위 분리 신청도 31건 접수됐다. 교섭단위 분리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분리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노동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다.
노란봉투법에 따라 하청 노조가 원청 사업장에 교섭을 요구하면 회사는 ‘지체 없이’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그러나 명확한 기일이 아닌 ‘지체 없이’라는 규정 때문에 기업들이 공고를 미루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하청 노조로부터 교섭을 요구받은 한 기업 관계자는 “아직 공고를 내지 않았고, 교섭 의제가 접수되면 사안별로 사용자성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기업들은 교섭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절차를 중심으로 대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섭 요구 사실 공고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되고,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이어질 경우 노동위원회 판단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섭 개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교섭을 직접 거부하기보다 절차를 통해 대응하는 방식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그동안 노사 간 갈등 속에서 기업이 일명 ‘노조 애먹이기’ ‘김 빼기’ 전략을 많이 해왔는데, 결국 약자인 하청 노조의 집단행동이 지리멸렬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대응 방식과는 별개로, 현장에서는 교섭 개시 이전 단계에서 다양한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교섭 구조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의 경우 교섭단위 분리 신청 등이 이어지면서 교섭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일례로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안정적인 교섭권 확보를 위해 기아자동차지부 동희오토분회, 포항지부 포스코사내하청포항지회, 광주전남지부 포스코사내하청광양지회가 동희오토, 포스코 원청을 상대로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했고 밝혔다. 쿠팡CLS도 마찬가지로 한국노총의 교섭 공고 이후 민주노총 측에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하면서 지노위 결정을 받게 됐다.
복잡한 단계적 절차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현장 상황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제도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확대하기 위한 입법 취지와 달리 하청 노조 입장에서는 복잡한 절차 구조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교섭단위 분리 여부나 대표노조 결정 과정에 따라 교섭 참여 자체가 제한될 가능성도 있어, 실제 교섭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장벽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향후 교섭 과정에서는 노조 간 대표성 문제나 교섭단위 설정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사용자성 판단 구조는 과거 불법파견 판단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하청 노조가 이를 입증해야 하는 만큼 초기에는 교섭으로 이어지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한주 전국금속노동조합 기획국장은 ‘일요신문i’에 “개정 노조법 취지가 그동안 보장되지 않았던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권과 단결권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법을 보장하려는 취지인데 그 법의 취지에 맞지 않게 원청사 대부분이 공고조차 내지 않는 상황은 개정 노조법을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조는 단체 행동 등 투쟁까지도 불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병훈 명예교수는 “(법 시행) 초기 현장에서는 절차와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교섭 과정이 단순하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최종 타협이 어떻게 이뤄질지, 교섭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갈등이 어느 정도 수반될지는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