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미국이 보내준 옥수수가루를 먹고 자랐다. 가난했다. 미군들이 먹다 버린 음식을 끓여 먹었다. 그걸 ‘꿀꿀이죽’이라고 했다. 드럼통 안에서 뻘건 국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미국 아이들이 버린 옷을 입고 자랐다. 미군이 들고 다니던 빨간 깡통에 든 콜라가 신기했다. 그들이 던져준 초콜릿은 천상의 음식이었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향기를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주는 미군의 파란 눈빛을 오래 기억했다.

주체성이 없어졌다. 미국이 없으면 한국이 없고 한국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시민권을 따고 으스댔다.
얼마 전이다. 한국에 사는 70대의 고교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미국 시민인데 전쟁이 나면 어떻게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죠?”
나는 속으로 분노했다. 군대도 안 가고 세금도 안 낸 미국 박사였다.
성조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서는 노인들의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그 시위를 본 미국인이 말했다.
“지금은 그런 미국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미국 구경을 할 무렵이었다. 기차를 타고 저녁 무렵 뉴욕역에 내린 그날을 잊지 못한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닥에 노숙자들이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들어차 있었다. 빌딩의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부자들과 하수구에 사는 노숙자들이 공존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온 청교도의 후손은 달러를 숭배하고 있었다.
여의도에 트럼프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 부사장한테서 들었다. 트럼프가 포천에서 골프를 치고, 아파트에 자기 이름을 사용한 대가로 돈을 받아 갔다고 했다. 그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한국에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을 지켜주는 대가를 내라는 것이다. 전직 국가정보원장이 한 얘기다. 미국의 위성사진들을 비싸게 산다고 했다. 공짜가 아니다. 그게 동맹인가. 조폭같이 보호비를 받는 것일까.
30대 중반쯤 공무원 자격으로 CIA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물었다. 왜 미국은 남의 나라 주권을 침해하느냐고. 쿠바의 바티스타 정권을 실례로 들었다. CIA 간부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자리에서 CIA 간부는 한국의 법 조항에 대해 조언했다. 조언이라고 했지만 영향력의 행사로 보였다. 미국이 얼마나 치밀하게 한국에 간섭하는지를 그날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한국은 이제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미사일과 탱크를 수출하는 나라다. 우리는 스스로 핵을 개발할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우리 세대의 주눅 든 사대 의식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미국 밀가루나 옥수수가루를 받은 빚에 대해 갚을 만큼 갚았다.
지금 트럼프의 미국은 명분도 없이 석유와 이권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남의 나라 지도자를 죽이고, 동맹국에 청구서를 들이민다. 그리고 부활절 오찬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말한다. 한국은 도움이 안 된다고. 충성도가 낮다고. 북한의 핵을 지켜주는 대가를 내라고 한다. 지금의 미국을 보면 교실의 일진 같은 아이가 떠오른다. 주먹으로 아이들을 침묵시킨다. 심지어 부하노릇 한 아이에게서도 삥을 뜯는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키는 거라고. 고슴도치의 바늘 같은 핵을 가져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형님 형님 해야 합니까.”
국가는 그 국민의 영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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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journalis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