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5일 일부 참석자들이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2기동단 경비과장인 김민규 경정에게 폭언과 욕설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광경이 담긴 영상이 ‘중국 경찰’이라는 허위사실과 함께 유포됐다. 김 경정은 경찰청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소요나 큰 폭력으로 번지지 않고 가시적으론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인다”면서도 “(일부의) 소규모의 불법과 일탈 행위는 대부분 교정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적었다.
6월 6일에는 모스 탄(한국명 단현명) 미국 리버티대 교수가 현장을 찾았다. 대표적인 ‘부정선거 음모론자’인 탄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수사받는 인물이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시위대는 ‘REVOTE(다시 투표하라)’ ‘명백한 부정선거’라고 외쳤다.
청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시위 양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배척했다. 대신 ‘재선거’ ‘참정권 침해’ ‘애국가’ 등을 외쳤다. 정치인들이 발언을 하려고 하면 야유를 보냈고, ‘부정선거 음모론자’인 전직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에게도 발언권을 주지 않았다.
6월 8일 평일이 되자 청년층이 대거 빠져나갔고, 집회는 다시 과격해졌다. 시위 참석자들은 여자핸드볼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의 소지품을 뒤졌다. 선수들에게 ‘양말을 벗으라’고 하는 등 몸수색까지 시도했다. 경찰에게는 관등성명과 공무원증을 요구했고, 응하지 않을 경우 ‘중국 공안’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동시 시국선언은 연세대 등 수도권 대학가를 중심으로 추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사전에 시국선언에 들어가야 할 요구 사항, 시위 구호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재선거와 부정선거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제외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이들은 “(6월 10일) 장동혁 대표가 주최하는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국민 참정권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 대학생 간담회’는 6·10 시국선언 대학들과 무관함을 알려드린다”며 “기성 정치권의 색을 배제하고자 의도한 시국선언인 만큼, 언론인 여러분의 보도에 혼동 없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18개 대학은 공동으로 “국정조사와 특검 등을 통한 철저한 진상조사로 책임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주권 침해에 대한 실효적 구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 및 국회의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중앙선관위 구조 개혁 △개혁 과정 공개 및 독립적 개혁 감시기구 구성 △대학가 규탄 목소리 정쟁화 금지 등을 요구했다.
시국선언에 동참하진 않았지만 많은 대학들도 입장을 발표했다. 전국 대학가 성명을 취합한 ‘한 표의 기록’ 사이트에 따르면 392개 성명(6월 12일 기준)에 나오는 주요 키워드는 △재발 방지 대책 △민주주의 △선관위·당국 규탄 △참정권 △진상규명 △신뢰·공정성 등이다. 대학가가 이번 사태를 음모론이나 단순 행정실수가 아닌 민주주의와 참정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시 시국선언에 참여한 한 대학생은 이번 요구 사안이 대학가의 중론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가의 공식적인 메시지에 부정선거나 재선거 등 정치적인 이슈는 다 빠져있는 것으로 안다”며 “최근 서울대에서의 (부정선거 주장 사례 등은) 개인·소모임 차원의 동아리에서 발표한 것이다. 대학가에서 공식적인 (선언들은) 그러한 주장은 빠져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도 국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거가 마무리됐다고 해서 흐지부지하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드린다. 누군가는 분명히 책임져야 할 것이고,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6월 7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현직 총학생회연합과 전국총학생회협의회 대표단을 만나 간담회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이 문제를 민주주의와 참정권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민주주의 문제이고 참정권의 문제”라며 “학생들과 정부가 동일한 출발선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정조사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6월 8일에는 4부 요인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조정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김상환 헌법재판소장, 조희대 대법원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신속한 진상규명,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뜻을 모았다. 이 대통령은 “참정권 침해와 선거 관리의 부실을 규탄하는 청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6월 11일 조정식 의장은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양 교섭단체(민주당·국민의힘)로부터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됐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투표지 부족 사태는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행정의 신뢰를 뒤흔든 심각한 사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민하 시사평론가는 “(2030) 세대엔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주당이 투표 기회에 개입했다는) 의심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며 “이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정부·여당이 보여줘야 음모론까지 가지 않는다. (부정선거) 의도가 있는 게 아니고, 해결하려고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줘야 (음모론) 쪽으로 끌려가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식 회의 없이 투표용지 하한선 60%→50%로 줄인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식 회의도 없이 2인 전결로 투표용지 하한선을 60%에서 50%로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6월 10일 국민의힘 김승수·김민전 의원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2025년 12월 10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에서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선을 60%에서 50%로 낮췄다.
같은 달 24일 ‘공직선거 절차 사무편람’도 이 내용으로 개정했다. 두 결정 모두 공식 회의는 없었다. 종합관리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사무편람은 선거정책실장 전결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용지 인쇄 매수 하한선을 2009년 80%, 2016년 70%, 2021년 60%로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투표율 증가, 투표용지 보관 문제, 잔여 투표용지 분실 등의 우려가 고려됐다. 남는 투표용지가 부정선거에 사용된다는 부정선거 음모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투표용지 하한선 50% 지침에 따라 송파구선관위 잠실 3·4동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동의 투표용지를 50%만 확보했다. 그러나 송파구 투표율이 65.8%를 기록했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위철환 중앙선관위원장 직무대행은 6월 11일 “(송파구) 전체 투표 인쇄 비율은 73.3%였고 송파구 전체 투표율은 65.8%이므로 실제 송파구 전체로 보면 투표용지가 4만 2000여 매가 남았다”며 “투표용지 분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고 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