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산금 수천만 원 묶인 채 관리비·원상복구비 독촉받아…사채까지 빌려 버티는 점주들 퇴점도 어려워
[일요신문] 홈플러스가 입점 점주들에게 자사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 단말기 사용을 다시 요구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일부 점주는 지난 6월 매출대금을 넉 달째 받지 못한 상황에서 회사 POS로 돌아가면 판매대금이 다시 묶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월 홈플러스의 안내에 따라 수백만 원을 들여 자체 POS를 마련한 점주들은 또다시 결제 방식을 변경해야 할 처지다. 정산대금과 보증금이 묶인 상황에서도 임대료와 관리비, 원상복구 비용 청구가 이어지면서 지인에게 돈을 빌리거나 사채까지 이용하는 점주들도 나오고 있다.
서울 중랑구 상봉동에 위치한 홈플러스 서울상봉점 입구. 사진=김정민 기자#수백만 원 들여 POS 바꿨는데 다시 교체 요구
홈플러스는 최근 입점업체에 자체 POS 대신 자사 POS를 사용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의 경우 해당 브랜드 본사에 연락해 가맹점주들이 홈플러스 POS를 사용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지난 10월 15일 찾은 홈플러스 강동점의 한 입점 점주는 “6월 매출대금도 안 들어왔는데 어떻게 홈플러스 POS를 쓰겠나. 우리는 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 점주는 6월 매출대금을 10월 중순인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 다른 입점 매장들도 상당한 금액이 묶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정산대금 지급 일정에 관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점주들이 홈플러스 POS 사용을 꺼리는 이유는 정산 방식에 있다. 홈플러스 POS로 결제하면 해당 월 정산대금이 다음 달 말 지급돼 최대 두 달가량 자금이 묶인다. 반면 자체 POS를 사용하면 정산대금을 직접 확보해 운영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정산대금을 받지 못한 점주들은 홈플러스 POS를 다시 사용할 경우 이후 정산대금도 지급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체 POS 사용은 당초 홈플러스의 안내에 따른 것이었다. 지난 7월 3일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자 홈플러스는 입점업체에 자체 POS 사용을 권고했다. 월드컵점의 한 입점 점주는 “계약을 끝까지 지키려고 피해를 보면서도 홈플러스 POS를 계속 유지했다. 그런데 본인들이 쓰지 말라고 해서 수백만 원씩 돈을 들여 키오스크와 개인 포스 같은 장비를 구했다”고 말했다. 장비와 전산을 설치하는 동안 닷새에서 일주일가량 영업도 중단했다. 이후 다시 홈플러스 POS 사용을 요구받으면서 장비 구입비와 영업 중단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정산대금을 돌려받지 못한 점주들은 운영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입점업체 중에는 수천만 원에서 억 대의 대금을 받지 못한 곳도 있다. 일부 점주는 대출이나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채까지 이용한 사례도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매출 감소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복수의 점주들은 홈플러스의 상품 공급 차질로 방문객이 줄면서 매출이 기존보다 30~50% 감소했다고 밝혔다. 일부 점주는 홈플러스의 영업 축소로 정상적인 장사가 어려워졌다며 임대료와 수수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시설 관리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기간에도 입점업체에 기존 관리비를 청구했다. 지난 7월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일부 점포에서는 시설 관리 협력업체들이 철수하면서 화장실과 쓰레기장이 폐쇄되고 청소·미화 인력도 사라졌다. 일부 지점에서는 점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청소 인력을 고용하거나 직접 시설을 관리해야 했다.
비용을 연체한 점주들에게는 내용증명까지 발송됐다. 홈플러스로부터 정산대금을 받지 못한 채로 임대료와 수수료를 연체하게 된 점주 상당수가 비용 납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입점 계약에는 두 달 이상 비용을 연체해 3개월째 접어들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 홈플러스에 받을 돈이 남아 있는 점주들이 오히려 계약 해지 위험에 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홈플러스가 자사 POS 사용을 요구하기에 앞서 점주들의 정산대금 미지급 위험부터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소상공인들은 한 달 벌어서 한 달 생활하고 경비를 지급하는 사람들이다. 한 달 치 돈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가 굉장히 큰 문제”라며 “월말에 마감하지 말고 일주일 단위로 끊어서 정산해 주면 불안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회생기업의 경영난이 거래업체의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홈플러스처럼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기업이 기존 계약을 근거로 입점업체에 의무 이행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소상공인의 채권 회수에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보증보험을 활용하는 등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영업을 중단한 경기 파주시 홈플러스 파주운정점 계산대 앞에 쇼핑카트가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파주운정점 점주 제공#보증금 못 받은 점주들에게 원복비까지 청구
경기 파주운정점은 지난 8월 재개장 대상 67개 점포에 포함됐으나 실제로는 문을 열지 못했다. 현재까지 공식 폐점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홈플러스는 입점업체에 원하면 영업을 계속해도 된다고 안내했지만 마트 영업이 중단되면서 고객의 발길이 끊겼다.
파주운정점의 한 점주는 “1년 이상 상황이 안 좋았다. 이제는 그냥 조용히 나갈 수만 있게 해주면 어떻게든 나가고 싶은데 나가는 점주들한테도 원상복구비를 요구한다.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상복구비까지 청구하니까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철수한 점주들에게도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가 지난 10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퇴점하는 입점업체에 원상복구 비용을 청구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과 달리 영업을 유지하는 67개 점포에서는 퇴점 시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의 파주운정점 점주는 “홈플러스는 마트 영업을 중단한 상태에서도 임대료와 수수료는 인하 없이 청구하면서 정작 향후 운영 계획과 보증금 반환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고 있다. 점주들은 관련 사항을 문의해도 담당자가 퇴사해 답변할 사람이 없다는 말만 듣고 있다”고 호소했다.
보증금과 미정산대금의 반환 시점도 불투명하다. 지난 9월 2일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메리츠금융그룹의 선순위 신탁담보채권 약 1조 3000억 원 등을 우선 상환할 계획이다. 반면 점주들의 보증금과 미정산대금이 포함된 일반 회생채권은 2032년부터 2037년까지 분할 변제할 예정이다.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점주협의회 전 부회장은 “홈플러스는 점주들에게 지급해야 할 대금과 보증금은 묶어둔 채 임대료와 수수료, 관리비에 원상복구비까지 기존대로 계속 청구하고 있다”며 “선순위 채권자의 채무 상환을 앞세운 회생계획 아래에서 소상공인들에게 운영자금 부족과 영업 손실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르포] 매대 곳곳 텅텅…재개장 후에도 손님 발길 뜸해
10월 15일 찾은 홈플러스 서울월곡점 식품매장. 매대 번호는 14번까지 붙어 있었지만 상품이 진열된 곳은 8번 부근에서 끝났다. 그 뒤편은 가림막으로 막혀 있었다. 매장을 둘러보는 동안 장을 보는 손님은 열 명 남짓이었다. 여러 대가 설치된 셀프계산대 앞에도 사람이 없었다. 마트가 다시 문을 연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상품을 채우지 못한 공간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품매장 밖으로 나가자 빈 공간은 더 늘어났다. 지하 4층은 출입이 막혀 있었고 지하 3층에서는 오가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지하 2층에는 이불·가구 매장 등이 문을 열고 있었지만 이곳에도 손님은 드물었다. 일부 점포에는 직원이나 점주도 자리에 없었다. 건물에 입점한 다이소 역시 한산했다. 여러 층을 돌아다녀도 장바구니를 든 고객을 만나기 어려웠다.
15일 홈플러스 일부 점포에서 상품이 채워지지 않은 매대와 한산한 매장 내부가 확인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상봉점의 냉장 매대, 월곡점의 빈 진열대, 강동점의 상품 진열대와 한산한 매장 내부 모습. 사진=김정민 기자월곡점의 한 입점 점주는 “전년 대비 손님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품이 부족해지면서 다른 층에서 판매하던 청바지와 티셔츠, 양말 등까지 식품매장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도 물건이 없다. 마트는 이것저것 사러 오는 곳인데 상품 구색이 너무 없으니까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상봉점은 월곡점보다 식품매장에 상품이 비교적 고르게 진열돼 있었다. 신선식품 매대에는 물건이 채워져 있었지만 일부 공산품의 구색은 부족했다. 취재 당시 눈에 띈 쇼핑객은 15~20명 정도였다. 상봉점 한 직원은 “재개장 직후 할인행사 당시 고객이 제법 찾아왔지만 상품 부족이 이어지면서 방문객도 점차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강동점 역시 가전제품 등을 판매하던 지하 1층 영업 공간이 폐쇄돼 식품매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고객 감소가 입점업체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에 따라 갈렸다. 여행사 등 사전 예약이나 단골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매장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다. 반면 장을 보러 온 고객의 방문에 매출을 의존하는 음식점들은 마트의 상품 부족과 방문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홈플러스는 지난 8월 13일 전국 67개 점포를 재개장해 첫날 106억 28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10월 3~5일에는 일매출이 30억 원대에 머물렀고 회사 목표 대비 매출 달성률도 30% 안팎으로 떨어졌다.
홈플러스는 지난 10월 7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회사는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별도의 퇴직 위로금은 제시하지 않았다. 최철한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회생계획안에서는 하루 매출을 100억 원으로 잡았지만 실제 매출은 30억~40억 원 수준에 그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계까지 불안해지고 있다”며 “MBK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