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은 2021-2022시즌부터 5시즌 연속 10위 자리에 머물렀다. 그사이 이상민 감독, 이규섭 감독 대행, 은희석 감독, 김효범 감독 등이 팀을 거쳤으나 모두 팀을 수렁에서 꺼내지 못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까지 범위를 넓히면 부진 기간은 더욱 길어진다. 이상민 감독 부임 3년 차였던 2016-2017시즌 정규리그 3위,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9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총 6번 10위를 기록했다.
이는 1997년 창설한 KBL 역사상 최악의 기록이다. 잠시 ‘암흑기’를 거친 팀은 많지만 5년간 최하위에 머물렀던 구단은 없었다. 타 종목으로 눈길을 돌려도 흔치 않은 기록이다. 과거 K리그의 부천 SK, KBO리그의 롯데 자이언츠 등이 4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쳤던 기록은 있다. V리그 여자부에서는 페퍼저축은행이 지난해 5년 연속 최하위 위기에서 벗어났다.
삼성은 1978년 창단한 국내 남자 프로농구단 중 가장 역사가 깊은 구단이다. 이들이 긴 역사 속에서 항상 약팀이었던 것은 아니다. 구단 유일의 영구결번(10번) 고 김현준과 김진 등이 활약하던 실업 시절에는 농구 대잔치에서 우승한 경험(3회)이 있다. KBL 출범 이후에도 통합우승 1회, 챔피언결정전 1회 우승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4년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뒤 이전의 적극적인 투자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FA 시장에서 ‘대어급’ 선수가 나와도 영입전에 나서는 모습은 드물었다. 이번 시즌은 샐러리캡 소진율이 70.1%에 불과할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맸다. 선수단 연봉 제한이 30억 원이지만 약 21억 원 정도만을 지출했다는 것이다. 최하위를 전전하던 전임 감독들 역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한 어려움을 털어놓곤 했다.

삼성의 이번 시즌 전망 역시 밝지 않았다. 대행 시절을 포함해 3시즌 연속 최하위에 그친 김효범 감독과 구단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이후 감독이 공석인 상태가 약 2개월간 지속됐다. 구단에선 빠른 감독 선임을 위해 움직였으나 운영 기업 측에서 최종 결재가 떨어지지 않아 지지부진한 모습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감독이 없는 상황에서 시즌 준비를 해야 했다.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 계약, 국내 선수 영입 작업 등에 나섰다. FA 시장에서는 백업급 자원인 여준형을 데려오는 데 그쳤다. 팀이 훈련을 시작했음에도 사령탑은 없었다. 약 2개월간의 공백 끝에 결국 김상식 감독이 부임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 과정이 순탄치 않아 어려움을 더했다. 당초 영입한 NBA 드래프트 전체 2순위 출신의 데릭 윌리엄스가 갑작스레 계약을 파기하고 그리스 무대로 떠났다. 이에 삼성은 크리스 맥컬러로 대체했다. 문제는 윌리엄스를 1옵션 외국인 선수로 점찍고 데려왔다는 점이다. 급하게 대체된 맥컬러는 앞서 안양KGC(현 안양 정관장)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던 자원이다.
신장 207cm의 빅맨 이원석의 군 입대 역시 삼성으로선 타격이었다. 기대치 대비 성장이 더디다는 평가가 있지만 팀 내 비중은 적지 않았다. 이원석이 빠진 자리에 적절한 보강도 없었다.
우려됐던 준비 과정에 시즌 개막 직전까지도 삼성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정규리그 이전 열린 시범경기 2경기에서 삼성은 2연패를 기록했다. 삼성의 시즌 전망을 밝게 바라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뚜껑을 연 시즌, 삼성은 세간의 예상과는 상반된 결과를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2016-2017시즌 이후 10년 만에 개막 2연승을 달성했다. 연승 행진은 6경기까지 이어졌다. 시즌 전적 6승 0패로 순위표 최상단에 올랐다. 그 누구도 내다보기 힘들었던 성적이다. 특히 연승 과정에서는 우승 후보로 꼽히던 고양 소노, 창원 LG, 원주 DB를 연달아 격파해 더욱 놀라움을 안겼다.
지난 시즌 대비 가장 큰 팀 내 변화는 김상식 감독의 부임이다. 초보 감독이었던 김효범 감독과 달리, 김상식 감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많은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KBL 무대와 국가대표를 넘나들며 감독 대행만 네 번을 맡아 ‘대행 전문’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안양 정관장 지휘봉을 잡고선 챔피언결정전 우승, 동아시아슈퍼리그(EASL) 우승 등을 이끌기도 했다.
김 감독은 색깔이 뚜렷한 지도자로 꼽힌다. 선수 한 명이 돋보이기보다는 팀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 공격에서는 5명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패스를 기반으로 하는 모션 오펜스를 지도자 생활 내내 사용해왔다.
이 같은 성향이 삼성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그간 FA 시장에서 적극 나서지 않으며 국내 자원 중 ‘에이스’ 역할을 맡을 만한 인물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정 한 명에 쏠리지 않는 공격 방식을 추구하는 김 감독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규태, 최성모, 한호빈 등이 골고루 지난 시즌 대비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팀을 끌어올리고 있다.
외국인 빅맨 케렘 칸터의 분전 또한 삼성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팀의 2옵션 외국인 선수로 뛰었으나 뜻하지 않게 올 시즌에는 1옵션 역할을 맡고 있다. 리그에서 가장 많은 출전 시간(평균 37분 12초)을 기록하며 전체 득점 2위(26.5점)에 올라 있다.
이상윤 IB스포츠 해설위원도 삼성의 가장 주목할 변화로 김상식 감독의 존재를 꼽았다.
“연령이 많은 감독이지만 선수들과 소통에 능한 감독이다. 소통을 통해서 선수들의 의욕을 끌어올렸다. 무엇보다 실점이 줄었다. 지난 시즌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실점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두 번째로 적다. 수비는 기술보다 의욕이 중요한 부분이다. 김상식 감독이 이 부분을 잡아준 것이 큰 변화다. 초반 2~3경기를 이기면서 선수들의 의욕이 더 올라온 것 같다.”
이어 그는 “2년 차 이규태가 많이 발전했다. 그 외에도 구탕, 이관희, 한호빈 등 많은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칸터도 골밑에서 굉장히 안정적이다”라며 “올 시즌 외국인 선수 2인이 동시에 뛰면서 포워드 성향 선수들이 들어오지 않았나. 이들 중 일부는 공을 오래 끄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면 국내 선수들이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 나온다. 그런데 삼성은 그런 장면이 잘 안 나온다. 모두가 부지런히 움직인다. 칸터도 궂은일을 잘해주고 맥컬러도 자신이 공을 오래 가지고 있는 선수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이어 “사실 6연승 과정에서 다소 운도 따라줬다(웃음). 하지만 1라운드에서 6~7승을 거둔 팀은 결국 6위 이내에 든다. 나는 삼성이 이번 시즌 ‘봄농구’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