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인턴십 경험 있는 국내 대졸자 선호…유학파들, 눈높이 낮춰 공직 시험으로 유턴
중국 소셜미디어(SNS) ‘도우반’엔 ‘하이꾸이(유학파를 일컫는 말)’들이 만든 방이 있다. 최근 이곳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글은 구직에 대한 어려움이다. 이들은 취업에서 당했던 일들을 토로하며 스스로를 ‘유학생 폐물’이라고 부른다. 한 회원은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출신들이 많다.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탄식 글이 가장 많이 올라온다. 차라리 국내 대학을 다니며 기업 사정에 맞는 기술이나 학위를 따는 게 훨씬 좋다는 후회도 많다”고 전했다.
최근 이 방에는 ‘급여 6000위안(113만 원)을 받고 입사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이는 “해외에서 석사를 마친 뒤 귀국해서 30개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중 면접 기회를 잡은 곳은 불과 3개였다. 내가 원하는 회사에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서 “급여 6000위안을 제안 받았는데 그동안 투입한 공부와 시간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유학생 구직 담당 업무를 하고 있는 왕즈치는 “해외 유학은 더 이상 고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왕즈치에 따르면 영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연 40만 위안가량(75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왕즈치는 “귀국 유학생들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일자리 중 하나는 국내 4대 회계법인이다. 이곳에 취업하면 처음에 받는 연봉은 12만 위안(2300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선원친 베이징대학교 부교수는 “경제적 보상만 놓고 보면 유학은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유학에서 얻은 경험을 단순히 돈으로 환산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왕즈치 역시 “유학에서 쓴 비용의 원금을 돌려받는 데 몇 년이 걸린다는 식의 계산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기업들은 유학 스펙이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유학생들은 본인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턴이나 실무 경력이 전무하다. 회사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내 대졸자들에 비해 직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들은 외국기업 또는 해외 시장을 노리는 기업 아니고선 메리트가 없다. 채용 때 가산점을 주거나, 입사 후 월급을 더 줄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2017년 영국으로 건너가 금융학 학사‧석사 학위를 마친 류이쿤도 취업에서 연일 고배를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2021년 10월 귀국, 상하이의 한 중견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그러면서 10여 개 회사에 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12월 말까지 ‘기쁜 소식’을 받지 못했다. 류이쿤은 “인턴 경력이 없다는 게 불합격의 원인이었다. 유학했던 것만 너무 믿고 있었다”고 했다.
하이꾸이들은 유학 때 경험과 국내 기업 문화가 이질감이 크다고도 불평한다. 류이쿤은 “국내기업 면접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어떤 인턴 경력이 있느냐’다. 하지만 해외에선 ‘특정 상황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겠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국내 기업은 개인의 특성, 역량, 잠재력보단 이력서에 기록된 인턴십만으로 채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학파들의 취업난에 대해 다른 분석들도 나온다. 기업 채용절차와 해외 대학 졸업 시기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왕즈치는 “보통 연말에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회사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 하지만 취업 시장은 11~12월 가장 뜨겁다. 귀국한 학생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인사 담당자는 “유학생 대부분이 도시의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취업할 때도 대도시나 대기업을 선호한다. 대도시에 위치한 기업이나 큰 기업들의 취업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그러다보니 유학파들이 기업이 아닌, 공직에 도전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미국에서 석사를 마친 한 유학생은 “기업보다 임금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취업이 수월하다. 왜냐하면 인턴십 경험이 부족해도 시험에 합격하면 채용이 되기 때문”이라면서 “또 공직 사회에선 유학파에 대해선 아직까지 호의적인 시선이 많다”고 했다.
4년간 해외 유학을 마친 뒤 2021년 1월부터 상하이의 한 기업에 다니는 마빈은 최근 회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마빈은 고향인 허페이로 돌아가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계획이다. 여기엔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 마빈은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너무 컸다. 외국어가 필요한 분야를 빼고 유학을 했다는 건 국내 기업 업무와 별 상관이 없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국내 대졸자들과의 경쟁이 버거웠다”고 털어놨다.
중국의 ‘2020 해외유학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표본으로 추출된 유학생 중 절반 가까이가 공직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1%가 국가기관 및 유관 사업체, 25%가 공기업에 재직하고 있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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