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78)의 취임 50일을 되짚어본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세 가지 키워드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80년에 걸쳐 어렵게 구축해 놓은 시스템이 트럼프의 공격 앞에 놀라울 정도로 쉽게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1기 때보다 더 빠르고, 더 공격적으로 변한 트럼프의 광폭 행보를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건 비단 미국인들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무역 적자 폭을 줄인다는 이유로 동맹국, 적국 할 것 없이 관세 공격을 퍼부어대는 통에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취임 50일이 지나자 곳곳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불안 신호는 먼저 월스트리트에서 나왔다. 경기 침체 공포에 휩싸인 뉴욕 증시가 폭락했고, 물가 상승 압박으로 인한 미국 내 민심도 점차 험악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또한 새로운 동맹 구도로 인해 국제 질서가 개편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또한 이 밖에도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가자지구 심지어 캐나다까지 장악하겠다는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는 점, 동맹국들을 가리켜 미국 경제를 착취하는 거머리라고 표현하며 관세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으면서 이런 기조가 계속될 경우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에는 국제무대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실제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 간 신뢰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심각하게 훼손됐다. 이에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나라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가령 핵보유국인 프랑스는 자국의 핵우산을 유럽 동맹국들에게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는가 하면, 폴란드는 자체 핵무기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어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이 구축해온 국제 질서를 트럼프가 완전히 붕괴 시켜버릴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모든 건 4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미 서방 동맹국들은 미국 중심의 체제에서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유명 정치학자인 조셉 S. 나이 주니어 역시 “트럼프는 무임승차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미국이 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어쩌면 더 위험한 점은 다른 데 있을지 모른다. 요컨대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대체할 새로운 시스템은 구체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트럼프의 행동을 보면 그는 19세기 강대국 정치 구도를 추구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직접 협상하고, 나머지 약소국들은 알아서 이를 따라오도록 만드는 구시대적 방식이다.

다시 말해 동맹국 간에 분열이 일어나면서 동맹 지도가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큰 변화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지난 3년간 민주당과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들은 전통적인 미국 외교 정책의 관점에서 이 전쟁을 바라봤다. 즉, 강대국으로부터 불법 침략을 받은 민주주의 국가를 미국이 앞장서서 수호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를 뒤집은 채 젤렌스키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면서 정작 같은 표현을 푸틴 대통령에게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를 침략국으로 규정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며 정당화했다.
또한 트럼프는 앞으로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이웃한 유럽 국가들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럽은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를 더욱 강력히 지원하고 나섰고, 결국 미국은 나토 31개 회원국 가운데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맹국들과 분열되고 말았다. 미국이 동맹국들과 반대 입장에 서게 된 건 1956년 수에즈 위기 이후 처음이다. 당시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했을 때 미국은 이들 국가를 비난하면서 거리를 둔 바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번 분열이 여러 면에서 1956년에 비해 더 깊고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한 유럽 고위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목표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있는 반면, 유럽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다음 표적이 유럽이 될 수 있다면서 경계하고 있는 분위기다. 독일의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는 “나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나는 이제 미국의 새 정부가 유럽의 운명에 거의 무관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전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 역시 “트럼프는 철학도, 국가 안보 전략도 없다. 그는 ‘정책’을 따르는 게 아니라, 그저 일련의 개인적인 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부 관계자들은 이를 가리켜 ‘먼로 독트린 2.0’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어쩌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포함해 각자의 고유한 세력권을 인정하는 세계 질서를 의미한다. 영국 정보기관인 MI6의 전 국장인 알렉스 영거는 BBC 인터뷰에서 “이는 마치 1945년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여서 강대국들이 작은 나라들의 운명을 결정했던 얄타 회담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우리는 바로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라고 예측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트럼프라는 인물로 형상화됐다고 주장한 ‘가디언’은 “트럼프는 매우 악의적이고 무정하며, 무책임한 인물이다. 그는 국민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미국인들을 자신의 저속한 쇼의 청중으로만 여긴다”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모욕하며 조롱한 장면을 “훌륭한 TV 쇼”라고 자랑스럽게 외친 모습이 이를 잘 나타낸다고 했다.
벌써 세계 곳곳에서는 이런 트럼프에 대한 반격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거리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트럼프의 영국 국빈 방문을 저지하려는 캠페인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에 맞서 펼쳤던 저항운동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대해 ‘가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주주의 국가가 지금은 극우 폭력배들과 깡패 집단에 인질로 잡혀 있다. 그 민주주의 지도자는 자신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일갈했다. 심지어 “트럼프의 선전 역할을 하는 소셜미디어 거물들과 테크 기업 CEO(최고경영자)들은 나치의 괴벨스조차 부러워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대표적인 반트럼프 언론사인 CNN 역시 트럼프의 50일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6주가 지난 지금,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오고 있다. 그에게는 계획이 없는 듯 보인다”라고 비난하면서 “트럼프 식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19세기 스타일의 관세 부과로 러스트 벨트 지역의 산업을 되살리려는 노력, 정부 축소 시도는 모두 그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즉흥적인 결정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다시 한 번 ‘미국 우선주의’ 대통령의 변덕과 집착에 의해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은 미국의 무역 정책을 가리켜 30일마다 반복되는 ‘심리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CNN은 ‘트럼피즘’의 본질이 ‘불확실성’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는 혼란을 조장하는 것이 트럼프의 목적이라는 의미다. 즉흥적인 정치를 펼치는 그의 연극적인 모습을 통해 민주당, 언론, 외국 정부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됐다는 의미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트럼프는 자신의 부동산 투자자 경력을 통해 배웠다. 가령 엉뚱한 요구를 하거나, 언쟁을 벌이거나, 갑작스럽게 입장을 변경함으로써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리는 식이다. 이런 동일한 방식을 정부 운영에도 적용하면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고 그 속에서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트럼프의 접근 방식이 관세를 부과하는 것보다 관세를 통해 위협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지속적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며, 그것이 유지될지 여부와 시기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더 큰 불확실성을 야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은 상대는 물론 미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바라트 라마무르티는 “행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보류하고, 선제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 있다. 이는 결국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CNN은 트럼프가 동맹국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계속해서 전통적인 적대국인 러시아의 편을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힘이 빠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브레이크아웃 캐피털’의 창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인 루치르 샤르마는 CNN 인터내셔널 인터뷰에서 “트럼프 취임 후 달러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했다. 전 세계가 미국에서 벗어나 제 역할을 찾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이제 미국의 정책 변동성을 고려해 투자할 가치가 있는 다른 나라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진짜 위험은 트럼프의 장난이 지금처럼 4년간 더 지속될 경우 세계가 재편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와 캐나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미국과의 거래가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미국의 떠오르는 라이벌인 중국과의 무역을 확대하거나 투자를 늘리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유럽연합도 비슷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
분명한 건, 트럼프의 협박과 괴롭힘에 대한 미국 동맹국들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