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란이 지난 3월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3월 24일 입점업체 1300곳에 대한 대금 지급 일시 중단 발표 이후 7일 만이다. 서울회생법원 회생15부는 지난 4월 3일 대표자 심문절차를 거쳐 이날 발란에 대해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발란의 월 평균 거래액은 약 300억 원대로 업계에서는 미정산액이 13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는 발란 사태와 관련해 입점업체 상인들의 고통 어린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한 상인은 “지난해 티메프에도 돈이 물렸는데 이번에 발란에서도 피해를 봤다. 너무 힘들다”라고 호소했다. 다른 상인은 “2월부터 정산이 밀렸다. 판매자들에게 각종 페널티를 부과해 야금야금 돈을 가져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기업회생에 돌입하면 미정산된 판매 대금은 상거래 채권으로 분류된다. 공익채권에 포함되지 않는 회생절차 개시 20일 전 이전의 상거래 채권은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린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이 대금을 제때 변제받지 못하면 자금이 묶여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발란이 입점업체들의 우선적인 보호를 위해 조기변제를 신청할 가능성도 있다. 홈플러스의 경우 입점업체들의 물품·용역대금 지급을 위해 조기변제를 신청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7일 서울회생법원에 입점업체들의 2024년 12월~2025년 2월분 물품·용역대금으로 약 3457억 원을 조기변제하는 방안을 신청해 허가를 받았다.
다만 조기변제는 해당 기업이 충분한 변제 여력을 갖췄을 때 가능하다. 홈플러스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금융 조달 비용 상승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회생을 신청한 경우다. 대금 결제와 관련해 부도가 발생하지 않아 현재도 정상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기 변제 여력이 충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발란은 2015년 창사 후 지속적으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유동자산보다 유동부채가 2배가량 많고 누적결손금은 785억 원에 달해 감사인으로부터 계속기업으로서 존속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월 실리콘투와 투자 계약을 체결해 1차로 75억 원가량의 자금을 납입받았으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조기변제를 하려면 발란이 변제 여력이 있어야 하고 회생 절차 개시 전에 별도로 변제 신청을 해야 소상공인 구제 가능성이 생기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대로 회생 절차 들어가게 되면 소상공인들은 정산 대금을 거의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규모 있는 명품 브랜드들은 주로 백화점이나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지만 발란 같은 플랫폼에는 명품을 소규모로 가져와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많다. 객단가가 높은 제품을 판매해온 만큼 이들이 입은 피해도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란이 방만한 경영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란은 배우 김혜수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등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썼다. 국내 명품 플랫폼 가운데 최초로 여의도 IFC몰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으나 경영난이 이어지면서 최근 운영 2년여 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외형 확장에 치중하다가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란 측은 기업회생 절차 신청과 더불어 M&A(인수합병)를 병행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M&A 성사 전망은 불투명하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라며 “럭셔리 쪽 시장 형편이 좋지 않아 동종업계에서 인수해갈 가능성도 낮고 타 업계에서도 굳이 의지를 갖고 인수할 이유가 없다. 피해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요신문이 발란에 입장을 묻기 위해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발란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다른 명품 플랫폼 업체들의 경영 실적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3대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트렌비·발란 가운데 트렌비는 2023년 매출 402억 원, 영업손실 32억 원을 기록했다. 2022년과 비교해 영업손실을 90%가량 줄였지만 매출도 절반으로 급감했다. 머스트잇 역시 2023년 매출 25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25%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78억 원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머스트잇의 매각설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머스트잇 측은 투자 유치를 하고 있을 뿐 매각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머스트잇 관계자는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시리즈C 단계의 전략적 투자 유치 절차를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이번 투자 유치는 유의미한 지분 투자를 전제로 한 논의로, 장기적 성장 파트너십 구축을 핵심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화) 국면으로 접어든 후 명품 플랫폼 전반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명품업계 한 관계자는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활성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직접 해외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지난해에는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명품 기업 중 일본 시장에서만 실적이 독보적으로 상승세였다”라고 말했다.
경기 둔화와 고물가 국면이 이어지면서 명품 플랫폼 전망도 밝지 않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발란 같은 플랫폼은 수요가 명확하다. 실속을 중시하는 알뜰한 소비자들이 명품 플랫폼을 이용하는데 물가가 오르면 이들이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백화점 명품관이나 스몰 럭셔리로 소비 수요가 양극화되기 때문에 포지션이 애매한 기업들은 앞으로도 고객 확보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발란 사태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커머스 업계는 이미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섰다. 한때 10%대 성장을 기록하던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둔화됐고 그마저도 대형 업체들이 대부분의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다”며 “투자를 받아 운영하던 후발주자나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지 못한 기업들, 특히 몇 년째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플랫폼들이 위험하다. 발란 이후로 적자 기업들을 중심으로 줄도산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