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서면과 비교해 유사율 및 새로운 내용만 정리
서울중앙지법에 근무 중인 A 판사는 최근 법원행정처에서 올해부터 제공한 서비스를 조금씩 활용해 보고 있다. ‘주장 서면 쟁점 추출 모델’인데 재판부에 사건이 배당되면, 변호사들이 제출한 서면을 AI가 분석해 주는 서비스다. 기존에 변호인 측이 제출했던 서면과 새롭게 제출한 서면의 유사성을 분석해 얼마나 동일한지 비교해준 뒤 새롭게 추가된 내용만 판사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보여준다.

A 판사는 “아직은 서면을 먼저 살펴본 뒤에 프로그램도 활용하고 있지만, 확실히 기존에 제출했던 서면과 유사한 지점은 조금 힘을 덜 들이고 읽을 수 있어 시간이 단축되는 것 같다”며 “주변에 신세계라고 평가하는 법관들이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유사한 하급심 판결을 자동 추천해 주는 서비스도 법원이 추진하고 있다. 현재 판사들은 사법정보시스템에서 직접 키워드로 사건을 검색해 유사 사건인지 확인해 판례와 법률 조항을 찾아 왔다. 이를 인공지능이 대체해 효율적으로 판례 검색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재판 속도를 더 빠르게 유도해 사건 관계인들이 신속하게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AI 판단 개입될까
우려도 적지 않다. 판사(사람)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판사를 돕는 ‘AI’의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서면 중심의 법원 재판 문화 속에서 ‘서면 쟁점 분석 AI’의 활용이 부적절하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형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최근 상갓집에서 만난 한 판사가 ‘서면 쟁점 정리 AI가 너무 좋다고, 기존 서면과 일치율이 90%라고 정리해주며 나머지 10%만 읽을 수 있도록 해줘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는 얘기를 듣고 우려감이 먼저 들었다”며 “기존에 제출한 서면 속에 동일하게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주장을 하기 위해 제출한 것인데 이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는다면 의뢰인 중 누가 제대로 된 판단을 받았다고 받아들이겠느냐”라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1심에서 2심으로 넘어갈 때 제출하는 서면도 결국 사건 내용 정리나 기본적인 법리 등을 고려하면 서면 유사율이 매우 높을 수도 있지만 결국 주장은 달라지는 게 대부분”이라며 “어느 재판부는 AI를 활용하고, 어느 재판부는 활용하지 않는다고 한 뒤에 이를 변호사가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면 다수의 변호사는 AI를 활용하지 않는 재판부한테 판단을 받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판결에 선입견 형성?
유사 판례 추천에 대해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판사가 사건을 다각도로 접근하기 전에 AI가 먼저 유사 판례와 선고 결과를 보여주면 (양형 등) 재판부가 생각할 수 있는 폭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앞의 대한변협 관계자는 “1심에서 유죄가 난 사건이 있다고 가정할 때 2심에서 무죄를 다투려고 하는데 2심 재판부가 사건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유사판례와 양형 결과가 먼저 나온다면 변호사가 주장하는 새로운 접근이나 그에 따른 새로운 판례, 감형 사유 등에 대해 선입견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AI 서비스가 없던 때도 유사 사건을 찾아서 양형이 어떤지 보고 그 틀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인지라, 판사 역시 유사판례의 영향을 받는데 AI가 스스로 판단해 제공한 유사 사건이 영향을 안 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나”라며 “유사 판례의 틀에 묶이게 되면 유죄에서 무죄로,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히는 사건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혁신적인 시선에서 접근해 새로운 방향을 던지는 재판 결과도 갈수록 줄어들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법원 역시 이를 모르는 바 아니다. 법관들이 직접 연구한 ‘사법에서의 인공지능 활용에 관한 가이드라인’도 나왔다. 법원 인공지능연구회(회장 기우종)는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유의점을 전제로 인공지능을 도입, 활용할 때의 관점 등으로 구성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서울중앙지법의 B 판사는 “최근 이 같은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해서 호기심은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워 활용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판사도 사람인지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기에 AI로 인해 억울한 재판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선에서 신중하게 도입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