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대선 후보 시절부터 관계 구축에 공을 들여온 바 있다. 내심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기대했으나 예상보다 높은 관세 적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2월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대규모 대미 투자까지 약속했지만, 예외 없이 24%의 상호관세를 통보받게 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국가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10%의 기본 관세만 부과하겠다고 밝혀 일본으로선 한숨 돌렸으나 한시적인 조치라서 향후 전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관세 조치가 리먼쇼크나 신종코로나 사태에 버금가는 충격이 될 수 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것은 추가 관세의 표적이 된 자동차산업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별도로 25%의 추가 관세를 발동하면 일본 기간산업인 자동차산업이 최대 13조 엔(약 128조 원)에 이르는 경제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도요타를 필두로 혼다, 닛산, 마쓰다, 스바루 등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550만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다이이치생명연구소의 나가하마 도시히로 애널리스트는 “자동차산업은 저변이 넓어 자동차 부품, 철강, 유리, 전자, 소매업, 운수업 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며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일본의 대표적인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도 타격이 우려된다. 20년 전 미국에 진출한 유니클로는 가성비와 기능성, 품질로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순조롭게 매장을 늘려왔다. 당초 유니클로는 제품을 중국 공장에서 생산했는데,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생산기지를 베트남 등으로 분산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베트남에도 46%라는 상호관세 폭탄이 떨어지면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유니클로의 약진 원동력이 성공적인 미국 진출에 있었던 만큼 난항이 예상된다.
반면, 의류와 생활잡화를 취급하는 무인양품(MUJI)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할 전망이다. 무인양품의 경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관세 영향을 고려해 미국보다 중국과 아시아로 점포 확대 방침을 틀었기 때문이다. 무인양품의 해외 매장 수는 총 699개이며, 이 가운데 미국 매장은 10개다. 유니클로와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에서 상품을 제조하고 있지만, 미국 수출 의존도가 낮아 그나마 영향을 피할 수 있게 됐다.
4월 7일 밤(일본시각)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로 관세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바 총리는 통화 직후 취재진과 만나 “일본이 5년 연속 세계 최대 대미 투자국이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미국의 관세 조치로 일본 기업의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방적 관세가 아닌, 투자 확대를 포함해 양국에 이익이 되는 폭넓은 협력 방안을 추구하자고 제안했다”면서 “미국과 일본이 담당 장관을 지명해 관세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상의 전화회담은 미국시간으로 월요일 아침 8시에 이뤄졌다. 이와 관련, TV아사히 뉴스는 “백악관이 주초부터 굳이 일본을 선택한 것은 동맹국으로서 중시하고 있는 증거라는 견해가 있는 반면, 특별대우가 아니라 쉬운 상대부터 담판을 지으려는 것 같다며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전했다.
향후 미일 양국은 실무자에 의한 본격적인 교섭에 나선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 관세 협의를 담당할 각료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을 지명했다. 이시바 총리의 측근으로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때도 이시바 총리를 적극 도운 바 있다. 미국 측은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으로 정했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관세 문제로 접근해온 나라가 거의 70개국에 이른다”며 “일본이 매우 빨리 나섰기 때문에 일본이 (협상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관세 조치를 ‘국난’으로 규정하고 범정부 대책본부를 설치하는 등 관세 완화를 끌어내기 위한 총력전 태세에 돌입했다. 이시바 총리는 미일 관세 협상의 진척 상황을 보면서 적절한 시기에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회담할 생각이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방위장비품 구입 확대 등이 협상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엔화 약세·달러 강세를 문제 삼아온 만큼 양국 장관 회담에서 환율도 의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에서는 미국 관세 정책에 대응해 국민에게 지원금을 나눠줘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여당 내에서는 일률적으로 3만 엔(약 29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부상했으나, 일부 의원은 고물가도 고려해 10만 엔(약 98만 원)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당장의 충격을 덜어줄 단기적 대책과 함께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자협력 등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한국, 호주, 나아가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이나 인도를 비롯한 글로벌사우스(비서구권 개발도상국)와의 제휴를 한층 깊게 해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올 국제사회의 혼란을 최대한 줄이도록 다각적인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