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 관련, 인도의 유력 경제지인 ‘이코노믹타임스’는 “반미적이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기는 없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오만함, 제국주의적 태도,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또한 “이런 조치로 인해 미국의 동맹은 약화되는 반면, 독재 국가들의 연대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가장 먼저 반미 정서를 드러낸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나 농구 등 스포츠 경기장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야유가 쏟아지고 있는가 하면, 파나마에서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과격 시위가 연일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반미 감정은 북중미를 넘어 유럽에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일례로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카니발 행사에서는 악수하는 트럼프와 러시아 푸틴 대통령 사이에 피투성이가 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끼어있는 모습을 연출한 인형 퍼레이드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히틀러-스탈린 조약 2.0’이라는 조롱 섞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한 영국에서는 영국군을 모욕하는 듯한 발언을 한 JD 밴스 부통령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월 초, 밴스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게는 미국과의 광물 협정이 전후 안보를 보장하는 데 있어 최선의 선택이다. 30~40년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몇몇 아무 나라(Some Random Country)’들의 2만 명 병력보다 훨씬 더 낫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험악한 분위기는 감지되고 있다. 3월 4일 발표된 ‘유고브’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이후 유럽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전체적으로 6~28%포인트 하락했다. 가장 큰 폭의 하락을 기록한 나라는 덴마크로, 48%에서 20%로 급락했으며, 가장 작은 하락폭을 보인 나라는 48%에서 42%로 떨어진 이탈리아였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현재 유럽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이다.
반미주의의 확산은 단순히 반트럼프 정서 때문일까, 아니면 그 밖의 다른 무엇이 있을까. 이에 대해 ‘이코노믹타임스’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반드시 트럼프 한 명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오래 전부터 심화되어 온 감정으로, 그간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해온 미국의 오만한 태도도 한몫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이 우주의 모든 신비를 풀었다고 생각하는 버릇없는 10대와 한집에 사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현재 반미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나라는 덴마크다.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덴마크 시민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최근 밴스 부통령이 그린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피투픽 우주 기지를 방문해 미군들을 대상으로 “그린란드 주민들은 덴마크보다 미국의 보호를 받는 쪽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덴마크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살링 그룹’은 유럽산 제품 라벨에 검은 별(★)을 표시해 소비자들이 유럽산 제품을 더욱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으며, ‘스파’ 편의점 체인은 덴마크산 제품에 덴마크 국기를 표시해두어 쉽게 구별이 가도록 했다.
페이스북에서는 미국산 제품을 식별하는 팁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보이콧 바러 프라 USA(미국 제품 보이콧)’ 페이스북 그룹은 2월 3일 개설된 이후 회원 수가 벌써 9만 3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여기에서는 미국 제품의 대체품을 추천하는 글들이 매일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산 음료, 신발,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소개하거나, 미국 브랜드를 대체할 수 있는 햄버거 체인과 인터넷 검색 엔진을 추천하는 게시물도 속속 올라온다.
페이스북 그룹의 운영자 가운데 한 명이자 학교 교장인 보 알베르투스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멋대로 선언하는 트럼프의 방식에 점점 더 분노를 느꼈다”면서 “그래서 행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밝혔다. 우선 그는 미국의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를 모두 해지하고, 대신 유럽이나 덴마크의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식사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알베르투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주머니에 돈이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NBC 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미국 문화를 사랑한다. 단지 그 대통령을 싫어할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일부이며, 트럼프와 공유할 수 없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코펜하겐 북부에 거주하는 은퇴한 심리학자인 메테 베네고르드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생활 속에서 미국산 제품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얼마 전 덴마크 최대 제과업체인 ‘탐스 그룹’에 편지를 보내 회사의 유명 제품인 ‘마지팬’에 사용되는 아몬드의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문의했다. 회사로부터 캘리포니아산 아몬드를 사용한다는 답변을 받은 베네고르드는 즉시 해당 제품을 불매 목록에 추가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페이스북 그룹에 회사의 서한을 게시하고 다른 덴마크인들에게도 이 제품 구매를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페이스북의 미국산 불매운동 그룹인 ‘보이코타 바로르 프론 USA(미국산 제품 보이콧)’의 회원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교사이자 이 단체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인 얀니케 코히누르는 “처음에는 그저 화가 났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전쟁의 책임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돌리는 듯한 트럼프의 발언을 듣고 폭발하고 말았다”고 분노하면서 “불매운동 그룹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라고 강조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젤렌스키에 대한 트럼프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항의 표시로 석유 및 해운 회사인 ‘할트바크 벙커스 AS’가 행동에 나섰다. 미군 및 미국 선박에 대한 연료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이 회사는 지금은 삭제된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미국인들을 위한 연료는 없다!”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이런 엄포는 노르웨이 국방장관 토레 O. 산드비크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러한 보이콧은 노르웨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됐다.
프랑스 소비자들 역시 맥도날드, 코카콜라, 테슬라, 스타벅스, KFC 등을 향한 불매운동으로 트럼프에 항의하고 있다. 이 밖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에어비앤비, 트립어드바이저, 나이키, 컨버스 등도 불매 대상에 포함됐다. 프랑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BoycottUSA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있으며,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고 있다.
지난 3월 27일, 프랑스-미국 관광 사이트 NYC.fr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인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찬성한다고 답한 프랑스인의 비율은 62%에 달했다. 이에 Ifop 소속의 프랑수아 크라우스는 “현재 프랑스에서 미국 및 미국 제품에 대한 인기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 40년 동안 이토록 낮은 적이 없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며 놀라워했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26%만이 미국과 프랑스가 “가치관적인 면에서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2004년에는 4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반감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이는 2010년 48%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 수치다. 또한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싶다’고 답한 비율은 30%에서 22%로 감소했으며,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 응답자는 15년 전의 37%에 비해 현재는 20%에 그쳤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불매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건 아니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현실은 조금 다른 듯하다. 예컨대 10대들이나 저소득층은 쉽게 이런 행동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맥도날드와 KFC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맥도날드 매장을 찾은 10대 학생들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왜 미국산 제품을 피하는지 이해는 하지만 그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학생인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해충 방제업에 종사하는 알랭(43)이라는 남성 역시 나이키 매장에서 새 운동화를 구입하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매운동은 이해하지만 나에게는 나이키가 최고다. 내가 늘 구입하는 운동화 브랜드다.”

이와 관련, 크라우스는 “프랑스 소비자들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옵저버’ 인터뷰에서 그는 “프랑스인들의 태도에서 미국과 그 정책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가지고 있는 입장과 실제로 하는 행동 사이에는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프랑스에서 불매운동에 찬성하는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은 확연히 구분된다. 가령 찬성하는 쪽은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과 65세 이상 고령층, 그리고 월 소득 2400유로(약 400만 원)가 넘는 부유한 계층이다. 크라우스는 “불매운동을 벌인다고 답한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을 잘 받은 부유한 사람들로, 신중하고 정보에 입각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습관을 바꾸면 이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또한 “그들은 대서양 양측의 긴장 관계를 잘 알고 있으며, 트럼프가 집권하는 한 미국 제품을 거부할 의사가 있다”고도 했다.
불매운동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페이스북 그룹 ‘보이콧 더 USA’를 설립한 프랑스 북부 출신의 농부인 에두아르 루세는 “우리는 트럼프나 미국 경제를 전복시키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작은 행동이더라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무언가를 하려는 것뿐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퍼스트’라고 말하듯 우리도 ‘프랑스와 유럽 퍼스트’라고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개인으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이것을 터무니없다고 여기든 상관없다. 경제는 개인 선택의 합이다”라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에서 불매운동 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스웨덴의 코히누르 역시 “이런 행동이 당장 경제에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마라톤보다 더 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는 분명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 애널리스트인 찰스 앨런은 “이런 불매운동에 따른 시장 점유율의 변화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유럽 소매업체들의 수익에 당장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