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자신과 대립각을 세웠던 미국 대형 로펌들을 대상으로 한 제재 행정명령을 연이어 발표하며 ‘로펌 길들이기’에 본격 나섰다. 지난 2월 25일 커빙턴 앤 벌링(Covington & Burling)을 시작으로,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선거캠프를 대리했던 퍼킨스코이(Perkins Coie), ‘러시아 스캔들’ 특검팀 출신 검사를 고용한 윌머헤일(WilmerHale)과 제너 앤 블록(Jenner & Block) 등이 주요 타깃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해당 로펌 변호사들의 보안 허가 중단, 정부 건물 접근 제한, 정부의 해당 로펌 직원 채용 차단, 그리고 해당 로펌 및 그 고객과의 계약 종료를 위한 조치를 포함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러한 조치가 단순한 보복이 아닌, 미래 정치적 토양을 결정하기 위한 ‘문화 전쟁’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3월 17일에는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가 스캐든을 포함한 20개 대형 로펌들이 다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차별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들 로펌이 ‘법적 절차를 무기화했으며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고 다양성 조치로 인종 차별적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3월 28일, 아직 행정명령을 직접 받지 않았던 스캐든은 ‘선제적 합의’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갈등을 예방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 합의에 따라 변호사 1700여 명이 일하는 스캐든은 최소 1억 달러 상당의 트럼프가 지지하는 재향군인 지원, 사법 시스템 공정성 확보, 반유대주의 퇴치 등의 프로보노(무료 법률 서비스) 활동을 제공하고, 사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주목할 점은 스캐든의 합의가 발표되기 전, 퍼킨스코이가 이미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대부분의 조항을 차단하는 법원 명령을 성공적으로 얻어냈으며, 같은 날 제너 앤 블록과 윌머헤일도 행정명령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여 행정조치 집행은 상당 부분 중단된 상태였으나, 스캐든은 법적 저항 대신 합의를 선택했다.
현재 커클랜드 앤 엘리스(Kirkland & Ellis)처럼 트럼프 1기 행정부에 고위 관료를 배출했음에도 다양성 우대 조치를 시행했다는 이유로 압박을 받는 로펌들도 있다. 이 회사는 행정명령을 피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별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캐든 압스의 합의 발표 직후, 이 로펌의 젊은 변호사 토머스 십은 합의에 반대하며 사표를 던졌다.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일본에서 태어나 10살에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초기에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일본식 영어 발음 때문에 놀림을 받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33’과 같은 숫자 발음을 연습하기 위해 방문을 닫고 끊임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텍사스주립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온 십 변호사는 스캐든에서 특히 프로보노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물론 미국에도 단점이 있다. 다만 전세계 어디에서도 불가능하지만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들이 있다”며 미국적 가치에 대한 깊은 믿음을 표현했다.
십 변호사는 스캐든이 합의 발표 이전에, 사내 반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회사 전체 메일 배포 목록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십 변호사는 이를 “회사 결정에 대한 비판을 침묵시키기 위한 명백한 시도”라고 비판했다.
합의 발표 후, 십 변호사는 동료 직원들에게 사직 인사를 이메일 보냈고 이 사직 이메일은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십 변호사는 “현 대통령 행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 체제로 들어가고 있다. 스캐든이 트럼프 행정부와 맺은 합의는 미국을 몰락의 길로 더 깊이 끌고 가고 있다”고 썼다.
이어 십 변호사는 “역사 속에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옳은 일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항상 해왔다”며, “스캐든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 언젠가 스캐든에 왜 남아 있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더는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십 변호사는 더 데일리(The Daily)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합의는 근본적으로 로펌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로’에 따르면, 스캐든은 합의 이후 모든 사내 소수자 친화 그룹(affinity groups)의 활동을 중단하고 웹사이트에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스캐든은 이전에 아시아계, 흑인, 라틴계 등 최소 10개의 소수자 네트워크를 운영해왔다. 사이들리 오스틴(Sidley Austin)은 ‘다양성·형평성 책임자’ 직함을 ‘포용성 책임자’로 변경했고, 그린버그 트라우리그(Greenberg Traurig)는 웹사이트에서 소수자 친화 그룹에 관한 언급을 삭제했다.
미국 법조계에서는 “고객을 가려 받으라는 말이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명령에 대응해 퍼킨스코이가 제기한 소송에는 500개에 달하는 로펌이 “이 소송 결과에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는 취지의 서명을 제출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로펌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현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대혐 로펌 합의의 실질적인 영향은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 4월 9일 백악관에서 열린 석탄업계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피하기 위해 프로보노 서비스를 약속한 로펌들을 석탄 산업 관련 임대 및 관세 협상에 활용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현재까지 총 4개 로펌이 트럼프와 합의했으며, 폴 와이스(Paul Weiss)는 4000만 달러, 나머지 3개 로펌(밀뱅크, 윌키 파, 스캐든)은 각각 1억 달러 프로보노 서비스를 약속했다. 석탄업계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로펌들이 트럼프에게 서명하고 있다. 1억 달러, 또 다른 1억 달러를”이라며 “그들은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발표한다. 나도 동의한다,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에게 많은 돈을 준다”라고 발언했다.
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들 중 일부를 활용할 것이다. 여러분(석탄업계) 문제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일할 로펌으로 이들을 활용할 것이다”라고 석탄 업계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같은 날 트럼프는 석탄 산업을 돕기 위한 4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중 하나는 내무부에 공공 토지에서의 석탄 채굴 임대를 우선시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이다.
더 데일리(The Daily) 팟캐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십 변호사는 스캐든 사직이 “미국에 온 것만큼이나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일본으로 돌아오라고 권했지만, 그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미국에 남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국에 대한 나의 의무”라고 답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지만, 모두가 일어나 이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있다. 아직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로펌과의 대립은 단순한 보복이 아닌 수년 전부터 준비된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미국 법조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학과 로펌을 젊은 세대에게 진보적 이념을 주입하고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핵심 채널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 두 영역에 대한 개입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며, 트럼프는 취임과 동시에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