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머스크의 행보를 보며 우리의 대기업 집단(총수) 상황을 떠올려봤다. 머스크처럼 소유 지분과 특유의 기업문화 등을 바탕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는 지배주주에 대해 이사회가 견제·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배주주의 막강한 영향력 행사 때문이다.
그래서 절실한 것이 제도적 접근이다. 테슬라가 머스크에게 부여한 천문학적 규모의 스톡옵션이 무효로 판단된 사건을 살펴보자. 미국 판례법은 이사가 기본적으로 회사에 대한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고 전제한다. 이에 따라 의사결정에 절차적으로 큰 하자가 있는 등 현저한 불합리함이 있지 않은 한 경영적 판단을 존중해 사법심사를 자제한다. 이른바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다.
그런데 이사회가 지배주주인 머스크를 상대로도 회사에 대한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고 전제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머스크가 테슬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스톡옵션을 받으려고 할 때 이사회는 회사와 전체 주주를 위해 스톡옵션 조건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해야 맞지만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 전제하기 어렵다. 이사회가 머스크의 지위나 영향력으로 인해 임무를 ‘해태(게을리하다)’하거나 회사가 아닌 머스크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판례법은 머스크 스톡옵션 사례처럼 이사나 지배주주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사안에 대해서는 경영판단원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절차적 공정성과 가격 등 실체적 공정성을 모두 요구하고, 법원이 공정성 충족 여부를 적극 심사한다. 이를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 기준이라고 한다. 이 경우 입증책임도 전환되므로 회사나 지배주주가 완전한 공정성을 입증해야 한다. 다만 독립성과 권한을 충분히 갖춘 특별위원회(Special Committee)가 해당 거래를 검토·승인하고, 소수주주 과반결의(Majority of Minority)로 주주총회 승인을 얻으면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봐 다시 경영판단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테슬라는 이러한 판례법에 따라 특별위원회 승인과 소수주주 과반 결의를 거쳤다. 그러나 법원(Delaware Court of Chancery)은 특별위원회가 충분히 독립적이지 않았고, 소수주주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성이 확보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머스크로부터 이사들의 독립성이 부족했고, 스톡옵션 조건을 두고 머스크와 적극적으로 협상하지 않았으며, 회사가 달성하려는 목표에 비해 스톡옵션이 천문학적 규모였기 때문에 가격 공정성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법원은 머스크에 부여된 스톡옵션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테슬라는 다시 별도의 위원회와 주총 재승인을 거쳐 판결 수정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항소를 통해 델라웨어주 대법원에서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에는 완전한 공정성이 입법적으로나 법리적으로 도입돼 있지 않다. 회사기회유용과 같은 이해충돌 거래에 대해서도 절차적 하자가 없다면 경영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만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 정용진 신세계 회장(당시 이사 직위)이 광주신세계 지분을 취득했다가 이후 고가에 매각한 일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소송,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이 계열사 한화S&C 지분을 장남(김동관)에게 저가에 매각한 일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모두 ‘완전성’ 보다 절차적 공정성에 집중해 판결이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우리 현실은 독립성과 권한을 충분히 갖춘 독립이사제나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등도 오랫동안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안타깝다. 이러한 제도 환경에서는 이사회가 이해충돌 거래에 대해 더 큰 주의 의무를 기울일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완전한 공정성은 미국에서 오랜 기간 다수의 판결을 통해 법리적 타당성이나 실효성이 충분히 확인된 법리로, 국내에서도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가까운 시일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충실의무 확대 등과 더불어 이사회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새 정부에서 적극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