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와 시즌 3에서 노재원은 참가번호 124번 김남규 역할을 연기했다. 전직 클럽 MD로 코인사기에 휘말렸다가 수억 원의 채무를 지게 된 그는 참가자들이 상금 456억 원을 걸고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판에 발을 디딘다.
MD 시절 친분이 있던 래퍼 타노스(최승현 분)와 함께 움직일 때는 별다른 활약이 없는 ‘부하 1’ 정도로 보였지만, 타노스의 사후 그가 가지고 있던 마약을 손에 넣은 뒤부터는 손댈 수 없이 폭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남규의 내면에 있는 열등감과 이로 인한 울분이 게임에 대한 공포감을 짓누르면서 그가 가진 폭력성을 극대화시키는 모습은 평소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배우 본인과는 180도 달라,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노재원의 아버지마저 아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고.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공개되고 아버지가 정말 뿌듯해 하셨거든요. 제가 나온 다른 작품들도 많이 보셨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게 봐주신 것 같아요. 저희 가족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아버지가 ‘재원아, 황동혁 감독님은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다. 네 연기도 정말 압권이었다’ 그러시면서 ‘네 안에 아직 124번 남규가 남아 있을까봐 그게 좀 우려스럽다’ 하시더라고요(웃음).”

“남규를 연기하면서 제 안에 있는 것들 중에 남규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 같은 것들을 끄집어내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남들에게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그저 타노스의 옆에 붙어 다니는 한 인물로만 비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연기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이유가 있는’ 남규를 연기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그걸 해낼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노재원이 머릿속에서 그려가던 남규를 촬영장에 꺼내 놓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마음이 앞서 과욕을 부렸다며 쑥스러워 하던 그는 촬영 초반, 황동혁 감독에게 “지금은 자제할 때”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나서야 지금의 신스틸러 남규가 탄생했다는 게 노재원의 이야기다.
“황동혁 감독님께서 ‘남규는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 처음엔 타노스 옆에 있는 캐릭터지만 타노스가 죽고 나서부터 남규의 활약이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좀 참아 봐라, 너 너무 날뛰려고 한다’고(웃음). 사실 현장에서 너무 긴장되고 주눅 드는 제 자신이 싫어서 어떻게든 패기와 기세를 가지고 뭐든 해보려고 했었거든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품 전체를 바라보고 내 스스로를 조율하는 것도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게는 그게 부족했던 거죠.”

“남규도 정말 못되긴 하지만, 술래잡기에서 명기와 같이 붙어 다닐 땐 ‘진짜 내 짝, 내 친구를 만났다’는 마음이었어요. 타노스는 나를 무시하고, 민수도 나를 꺼리는데 명기만 나랑 친구해준 거잖아요? 그래서 그때 남규는 ‘나도 친구랑 놀러 다닌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랬는데 제가 죽고 나서 명기가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보니까 얘가 보통 놈이 아닌 거죠(웃음). ‘나 까짓 게 감히 명기랑 동등하다고 생각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마지막 게임에서 명기의 모습을 볼 땐 시완이 형의 연기가 정말 인상 깊어서 저까지 충격을 먹게 되더라고요.”
시즌 2에서 함께 붙어 다니면서 남규의 인정 욕구와 열등감을 한없이 자극했던 타노스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았다. 타노스 탈락 후 그의 마약을 챙기면서 남규는 마치 자신이 타노스가 된 것처럼 성대모사를 하거나 태도를 흉내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대본에는 없었던 이 설정을 새롭게 집어넣은 것이라고 설명한 노재원은 남규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타노스 역의 최승현의 덕이 컸다는 점을 꼭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 3’에서의 열연으로 이제 해외에서도 완벽히 눈도장을 찍은 노재원이지만, 국내 대중들은 이보다 앞서 그의 ‘연기 맛’에 빠져든 지 오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노재원은 망상장애 환자 김서완 역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눈물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O난감’,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쉽게 잊을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데뷔한 지 고작 5년 만에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아직은 자신을 알아 봐주는 대중들에게 부끄러워 쉽게 다가갈 수 없다는 노재원은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조용히 ‘나만의 반짝임’을 닦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빠른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웃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요즘은 정말 제가 최선을, 진심을 다하면 누군가 알아봐 준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분들이 왜 저를 좋아해주시는지는 정말 궁금하지만 일부러라도 알려고 하지 않고 있어요. 무엇 때문에 내게 집중한다는 걸 알게 되면 그걸 인식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 같거든요. 그저 제게 주어진 역할로서, 연기에만 계속해서 진심과 최선을 다하면 앞으로도 저를 알아 봐주시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