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이 석유화학 자급률을 높인다면서 2020년 이후 생산 설비를 대규모 증설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 국가들 또한 산유국 역할에 머물지 않고 연산 1280만 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 설비를 구축하면서 석유화학 공급 과잉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샤힌 프로젝트, 에틸렌 180만 톤 추가 생산
산업통상부와 산업은행 등에 따르면, 울산단지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안 수립을 위한 컨설팅사 선정이 지연되고 있다. 에쓰오일과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가 각자 유리한 컨설팅사와의 계약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3사는 구조조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진정성 있는 첫발을 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쟁점이 되는 곳은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은 현재 에틸렌 생산량이 18만 톤에 불과하다. 울산단지 내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의 생산량이 66만 톤, 90만 톤이라 에쓰오일은 의미 있는 규모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에쓰오일은 9조 3000억 원을 쏟아부은 샤힌 프로젝트가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 상업 가동에 들어간다. 샤힌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에틸렌이 연간 180만 톤 추가 생산된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에틸렌 대부분을 폴리머 공장에 원료로 투입해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을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자사에서 소화하고 남은 물량을 다운스트림 업체(에틸렌·프로필렌 등을 활용해 각종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에 판다는 것이 회사 측 계획이다.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는 샤힌 프로젝트 생산 물량까지 합쳐 감축안을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에쓰오일이 이에 동의할 리 없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강한 불쾌감을 내비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초 에쓰오일은 경쟁사들을 가격 경쟁력으로 압도하기 위해 샤힌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30년이면 원유 수요 피크아웃(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것)이 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손익분기점을 대폭 낮춰 살아남겠다는 것이다.
TC2C(Thermal Crude oil to Chemical) 공정이 대표적인데, 이는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 원료를 뽑아내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기술이다. 국내에 없던 설비이며, 아람코가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정유사가 기존 설비를 활용해 두바이유를 분해하면 나프타 수율이 15%에 불과하지만 TC2C를 거치면 수율을 70%까지 높일 수 있다.
샤힌 프로젝트의 에너지 효율은 글로벌 톱티어들과 비교해도 10% 이상 뛰어날 것이라는 것이 유진투자증권의 분석이다. 유안타증권은 샤힌 프로젝트의 에틸렌-나프타 손익분기점이 200달러 이하로, 아시아 경쟁업체의 250달러보다 유리하다고 봤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업황을 감안했을 때 연간 영업이익이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부수익률(IRR)이 18%에 달하는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투자금 9조 3000억 원 중 외부 차입으로 3조 원을 조달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부 자금을 연 4% 안팎 금리로 산업은행이 댔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처음 프로젝트를 들었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면서 “우리 산업을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를 키우는 것이라는 점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도 감축 계획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 두 곳만 합작법인 설립을 논의할 것이란 얘기도 있으나, 구체화된 바는 없다. 심지어 두 회사는 여수, 대산의 경쟁사들과 달리 아직 버틸 만하다는 입장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울산지역 구조조정은 쉽지 않을 것이며, 이 과실을 에쓰오일이 가장 많이 따먹을 것이란 게 증권가의 일반적인 평가다. 한 증권사는 여신 통제 등 정부와 국책은행의 강제적인 압박에도 버틸 수 있는 회사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는데, 여러모로 에쓰오일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11월 이후 하나증권, 한화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대다수 증권사가 에쓰오일에 대한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면서 업종 내 톱픽(최선호기업)으로 꼽았다.
#대산·여수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듯
울산에 비하면 대산과 여수지역은 감축안 마련이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대산단지는 롯데케미칼이 자사 설비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의 합작회사인 HD현대케미칼에 넘기는 방식을 추진 중이다.
HD현대케미칼은 2014년 HD와 롯데케미칼이 60 대 40 지분율로 설립한 석유화학사로, NCC와 중질유 기반 석유화학시설(HPC)을 운영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설비를 넘긴 뒤 설비 가격만큼 지분율을 50 대 50으로 조정하는 안을 놓고 조율 중인데, 관련된 내용을 이미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양사 관계가 좋아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산 구조조정은 LG화학도 따로 진행 중이다. 범용 합성고무인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생산을 중단하고, 나주 공장의 스타이렌아크릴레이트라텍스(SAL) 생산 설비를 가져와 생산 효율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은 나주 지역자치단체의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 방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수단지의 경우 외부에 알려진 내용은 LG화학이 한때 같은 그룹이었던 GS칼텍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한 뒤 이 회사에 여수단지 NCC를 매각하고 통합 운영하자는 제안을 던진 것 정도다. 양측 모두 필요성을 인정해 속도가 붙을 수는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대립하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란 게 현장의 분석이다.
그 외에 여천NCC를 두고 한화와 DL이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 또한 정부나 산업은행이 확실히 입장을 정리해 주면 회사는 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주주들 눈치에 대립하는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결국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면서 “어느 정도 강압적으로 정부가 정리해주면, 여수까지는 어렵지 않게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정부의 석유화학 구조조정 의지는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석유화학 업계를 재편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에쓰오일은 정부의 기조에 맞춰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정유·석유화학 수직계열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