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후보는 지난 5월 8일 유튜브 경제 채널 라이브 토크쇼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구축해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달러 및 미국 국채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의 핵심 정책 중 하나지만, 우리는 가상자산에 대해서 입장이 명확하지도 않고 적대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스테이블 코인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또 오는 8월까지 스테이블 코인 관련 입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일본은 2022년 6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법정화폐에 일대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인정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2024년 7월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방지에 초점을 맞춘 가상자산 1단계 법안(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시행했다. 이어 스테이블 코인, 가상자산사업자, 거래, 인프라 등을 포괄적으로 규율하는 2단계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24일 디지털자산 기본법 1호 법안 초안을 공개했다. 조항 중에서 스테이블 코인 인가제도 포함돼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4월 28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통해 공식 발표한 ‘디지털 가상자산 7대 공약’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규율 체계 도입이 포함돼 있다.
정치권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는 지난 5월 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한국 원화와 1:1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실질적 자산이 없는 KRT(테라코인)가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이라며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은 미국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인 USDT(테더)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게임의 룰이 짜여진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용 스테이블 코인을 아무런 전략 없이 ‘만들자’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테더, USD코인(USDC)과 같이 법정화폐를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은 테라의 구조와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테라는 담보 없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라며 “테라-루나 사태 등을 계기로 알고리즘형 스테이블 코인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를 퇴출해야 한다는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라고 말했다.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 유로, 엔화 등 실존하는 법정화폐를 일대일 비율로 예치(담보)하고 그만큼의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해 높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가진다. 반면 알고리즘형 스테이블 코인은 담보 없이 사전에 설정된 규칙에 따라 시장 상황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함으로써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조다.
테라는 자매 가상화폐 루나와의 교환과 소각이라는 방식을 통해 1달러 가치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알고리즘 설계에 심각한 결함으로 인해 테라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졌는데, 루나의 가치도 동반하락하고 가격 안정성에 의문을 가진 투자자들이 대량 매도를 하는 등 뱅크런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세가 마이너스 99.99% 하락하며 투자자들의 큰 피해로 이어졌다.

민병덕 의원의 디지털자산 기본법 초안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발행 시 인가 주체는 금융위원회다. 금융위는 김소영 부위원장 주재로 네 차례에 걸친 가상자산위원회를 여는 등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를 포함한 입법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하반기를 목표로 정부안을 발의할 방침이다.
그런데 스테이블 코인 규제 권한을 두고 금융당국과 통화당국 간 주도권 경쟁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고경철 한은 전자금융팀장은 지난 5월 9일 한은에서 열린 한국금융법학회 학술대회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정책, 금융 안정 등 중앙은행의 정책 수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중앙은행이 인가 단계에 실질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중앙은행 정책 수행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민병덕 의원은 지난 5월 12일 SNS 등을 통해 “한은이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제도화 논의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중앙은행의 통제력 강화가 아닌, 시장의 자율성과 혁신을 통한 디지털 금융 생태계 활성화와 안정성 확보에 맞춰져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도 스테이블 코인이 상용화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홍콩계 스테이블 코인 결제 카드 회사인 레돗페이는 최근 우리나라 결제 시장에 진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중은행들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할 예정이다. 금융계에 따르면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가 신설한 ‘스테이블코인 분과’에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과 금융결제원 등이 참여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따라 우리나라도 자체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는 합당한 거 같다”며 “비트코인 등 변동성이 있는 암호화폐와 달리 고정가치로 발행하는 것이 목표인 스테이블 코인은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법정화폐처럼 결제 수단으로 상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진 교수는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때 핵심은 스테이블 코인이며, 부동산, 주식 등 모든 실물자산들이 블록체인 기술 등을 통해 디지털화될 가능성이 높고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며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히 디지털화된 법정화폐보다 접근성이 높고, 특히 외국인 입장에서 접근하기가 더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면 글로벌 자산이 우리나라로 많이 유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법정화폐 담보형 스테이블 코인이어도 가치가 흔들렸던 사례가 있었던 만큼 도입 시기를 당기는 것만큼 금융·통화당국의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다른 관계자는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하자 이 은행에 준비금을 예치해둔 USD코인의 가치가 급락했던 사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변동성 우려가 생길 수 있다”며 “금융·통화당국의 적절한 대응책이 필요한 것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도 대응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