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무죄 판결과는 별개로 삼성물산 합병,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 작업이 우리 사회와 자본시장에 큰 논란과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잘못에 부합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야말로 재발 방지의 지름길이다. 판결의 부당함이나 아쉬움이 있지만 그와 별개로 대법원 판단은 최종적이며 존중될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 이후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집단과 자본시장, 나아가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나아가기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짚어보자.
삼성물산 합병 건은 재벌 대기업집단 거버넌스의 후진성과 그로 인한 주주가치 침해를 보여준 교과서 같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합병의 주목적이 ‘시너지 효과’ 등 사업상 필요성보다는 이재용 회장의 지배권 승계·강화에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합병의 배경과 주된 목적에 대해 하급심부터 일관되게 애써 눈을 감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 등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중이 일찌감치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 판단의 공정성이 크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앞으로 지배주주의 전횡이나 편법적 지배권 승계를 막으려면 결국 이사회와 주주총회 같은 공식적 거버넌스 기구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연계된 이재용 회장(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횡령 혐의 형사재판 과정에서 삼성은 이른바 ‘치유적 사법’이라는 명분으로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했다. 해당 위원회는 이 회장의 유리한 양형을 끌어내기 위해 설치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며, 그 법률상 근거나 권한도 불분명하다. 상법상 공식적 견제·감시기구이자 회사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삼성물산 합병과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는 회사, 일반주주와 지배주주 간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완전한 공정성’ 같은 엄격한 사법심사를 적용하고(관련 칼럼 총수 견제 못 하는 이사회…‘완전한 공정성’ 제도화 절실), 주총에서 일반주주에 의해서만 표결할 수 있는 이른바 ‘소수주주 과반결의’을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소유구조 차원에서 삼성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문제다. 보험업법 등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삼성이 스스로 삼성생명의 재무적 건전성과 그룹 전체의 건강한 소유지분구조를 위해 한시라도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연금은 뒤늦게나마 이 회장 등을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상태이고, 아직 1심 변론이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상태이다. 만약 유죄 판결이 나왔다면 국민연금이 보다 수월하게 위법행위와 손해를 입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박근혜 전 대통령,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은 국정농단 사건과 연관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각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바 있다.
합병 반대주주가 행사한 매수청구권 가격 산정과 관련해 대법원은 회사가 제시한 가격이 부당한 수준으로 낮다고 보고, 더 높은 가격을 인정한 바 있다. 또, 국제중재판정에서는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투자자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인정한 사례도 있다. 민사 사건은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형사 사건보다는 상대적으로 입증의 정도가 낮은 편인다. 국민연금이 민사소송에서 최선을 다해 손해를 보전받아야만 국민 노후 자금의 손실이 회복될 수 있다.
한편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당시 최대주주로서 주주가치 보호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2017년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지침)를 도입했다. 약 8년이 지난 지금 스튜어드십코드가 본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은 주주가치 보호를 위한 관여활동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인 수익성과 지배구조 개선 효과 등이 입증된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투자도 대체투자 방식 등을 통해 적극 나서야 한다. 주주행동주의가 주주가치 제고의 지름길임은 충분히 증명되었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