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발언에는 정 전 대표의 8월 전당대회 전략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석파’를 언급한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 대 정청래’ 구도를 ‘김민석 대 정청래’ 구도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민석 대 정청래’ 구도는 친여 스피커 김어준 씨가 처음 꺼낸 것이기도 하다. 정 전 대표는 김 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 게시판이 ‘민심의 척도’라고 말할 정도로 김 씨와 밀착한 상태다.
정 전 대표가 프레임 전환에 나선 배경에는 ‘명청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정 전 대표는 이재명 정부 분기점마다 분란을 일으키며 엇박자 논란에 휩싸였다. 정 전 대표로서는 임기 2년 차 대통령과 대립구도를 형성한 상태에서 연임에 도전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6월 8일 이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 대통령은 “이겼냐 졌냐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이길 곳을 졌다, 이겨야 하는 곳을 졌다고 하면 그건 문제가 다르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승리’를 선언한 정 전 대표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야당은 창을 잘 써야 하지만, 여당은 그릇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대표의 ‘강성 행보’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대목으로 풀이됐다.
6월 9일 유럽 순방 환송 행사에 정 전 대표가 참석하지 않은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중동 전쟁 장기화·선관위 부실 투표 논란 등 국내외 상황 때문에 환송 인원을 최소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정 전 대표 연임을 반대하는 의중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6월 10일 정 전 대표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 등 보수 진영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발언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친명 진영에선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일부에서는 이 대통령 탄핵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협박성 발언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정 전 대표는 6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 외교 역량으로 ‘월드 클래스’의 세계적인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하며 뒷수습에 나섰다. 6월 24일 ‘2026년 6·3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자 워크숍’에서도 “우리의 목표는 하나”라며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선진 강국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 전 대표는 ‘올드 민주당’ 지지층을 끌어안는 행보도 보인다. 6·3 지방선거를 거치며 지지층 사이의 갈등 골은 깊어진 상태다. 전통 민주당 지지층인 ‘올드 민주당’과 이재명·민주당 지지 성향을 띠는 ‘뉴이재명’으로 나뉘었다는 분석이다. 양측은 경기 평택을 재보궐 선거에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올드 민주당지지)와 김용남 민주당 후보(뉴이재명 지지)를 두고 전초전을 치른 바 있다.
6월 24일 정 전 대표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나며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한 통합과 연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1인 1표제 도입 성과를 강조했고, 중단 없는 검찰개혁을 약속했다. 연일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를 강조했다. ‘최소한의 허용 입장’인 이 대통령과의 대립각이 불가피해 보이는 대목이다. 정 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 인사들과의 만남도 가질 예정이다. 올드 민주당 지지층을 겨냥한 행보로 풀이된다.
#김민석-송영길 연합
친명계는 ‘명청 갈등’과 지방선거에서의 ‘정청래 책임론’을 부각한다. 6월 8일 이언주 의원은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음에도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격전지에서 민심을 충분히 얻지 못했다”며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황명선 강득구 최고위원도 지방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차기 최고위원 선거에 나오지 않겠다며 정 전 대표를 압박했다.
강 최고위원은 6월 24일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와 한배를 타고 있다. 배의 선장이 둘일 수 없다”며 “집권여당 지도부는 대통령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함께 성공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명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정 대표의 반이재명 행보를 비판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김민석 총리는 6월 21일 ‘6·3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자 워크숍’에서 “좋은 결과를 냈지만 아쉽게도 완벽한 승리라고 선언하기 조금 어려운 결과가 있어서 우리 모두 더 성찰하고 더 혁신하고 더 나아가야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 대 정청래’ 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대표 측이 꺼낸 ‘친석 대 친청’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정 전 대표는 대통령을 구도에서 빼고 싶어 한다. 대통령이냐 정청래냐 택하라 하면 누가 정청래를 선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김민석·송영길은) 보완수사권 같은 문제에 참전하면 안 된다. 이런 것을 가지고 각이 서면 ‘정청래 대 이재명’ 구도가 깨진다”고 분석했다.
송영길 의원은 연일 ‘반청’ 메시지를 내며 정 전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송 의원은 6월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청래 지도부와 관련된 분들은 형식적으로 승리라고 보지만 상당수 의원은 사실상 패배라고 지적한다”며 정청래 책임론을 제기했다. 전날인 21일에는 KBC 광주방송에서 “정 전 대표가 출마하면 제 출마 개연성이 훨씬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 출마는 전대 변수로 꼽힌다. 친명계는 1차 투표에서 정 전 대표의 과반 득표를 막은 다음 결선 투표에서 김민석·송영길 연합으로 승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전대는 정청래표 ‘1인 1표제’와 결선투표제가 적용된다. 1인 1표제 통과에 따라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 반영 비율을 20 대 1 미만에서 1 대 1로 조정된다.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합산해 당대표를 선출한다. 득표율 50%를 넘는 후보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실시한다.
민주당 권리당원 3분의 1이 집중된 호남은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김 총리는 전북 익산에 집을 마련하는 등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 전 대표도 6월 19·20·23일 호남을 순회하며 당심 얻기에 나섰다. 전남 고흥 출신인 송 의원은 호남 당원들의 지지세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도권 표심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친명계 관계자는 “송 의원 참전으로 호남에서는 한쪽으로 쏠리는 효과가 많이 분쇄될 것”이라며 “표 차이는 결국 수도권에서 나지 않겠나”라고 점쳤다.
전대가 과열 양상을 띠면서 당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6월 19일 “같은 진영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경쟁이 아닌 전쟁을 해서 되겠나”라며 “원수 싸우듯 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정치의 퇴행’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의원은 “어마어마한 기술 변화, 산업 전환이 목전에 들어와 있다. 청년들 같은 경우 자산 격차에서 구조적으로 소외됐다”며 “이런 것에 대한 여당다운 비전이라는 게 없다. 그런 경쟁을 하고 있는 게 없다. 중도 실용이나 혹은 기존의 정체성 정치 이런 것을 내세워 일종의 세력 결집과 ‘패싸움’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의원은 “과거 김대중 정부 때는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에 대해 논쟁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부동산 정책으로 논쟁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네 편, 내 편, 친노, 친문, 친명, 친청 이렇게 편 가르기 한다. 유튜버, 스피커, 일부 강성 당원까지 다 뛰어들어서 서로 죽일 듯 싸움을 하고 있다. 무얼 위한 싸움인가.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한 싸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