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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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의 자유인
모처럼 약속된 일정이 없는 날이다.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 하다가 구치소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삼십대에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냈다. 겁이 났던 그는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러다 근 삼십년 만에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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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의 보스와 북한의 김정은
변호사인 나는 폭력조직의 보스 몇 명으로부터 초대받아 강남의 고급 일식집에 간 적이 있었다. 처음 보는 그들의 태도는 오만방자했다. 권력자였다면 영화장면속의 건달처럼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들은 식사도 나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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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천국
많은 재산을 가진 한 여인을 만났다. 원래 부잣집 딸이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신문보도를 오르내리니까 내게 이런 의논을 했다. “저희 집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인데요, 북한의 핵 위험이 더 심해지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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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닥친 죽음들
LA의 어두운 밤길을 지친표정의 한 늙은 흑인 영감이 걷고 있었다. 그는 바퀴를 단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진 고행자였다. 물기로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의 불빛이 번들거렸다. 거리의 귀퉁이에 수상한 느낌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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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행복
변호사로 오랫동안 감옥을 드나들었다. 어느 해 겨울 눈덮인 교도소 접견실 안에서 한 죄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비가 뿌리는 날 쇠창살을 통해 교도소 마당을 바라보면 담 밑에 피어난 작은 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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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같은 여성변호사
변호사로 30년 세월을 흐르다 보니 사무실에 와서 일을 배워보겠다는 젊은 변호사가 여러 명 있었다. 로스쿨이나 변협에서도 실무공부를 시키기 위해 변호사들을 보냈다. 시작부터 참 여러 모습이었다. 기성변호사들의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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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시험에서 86번 떨어지고 변호사가 됐습니다.
교대역 부근에서 칠십대 중반의 변호사가 부인과 함께 조그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독특한 부부였다. 그 부부는 인터넷으로 젊은 변호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다. 그들이 고용해서 일을 시키겠다는 게 아니었다. 노숙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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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마광수
마광수 교수가 베란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일흔네살의 누님이 지키는 장례식장은 조문객이 없이 썰렁했다고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다. 1992년경 그의 책 ‘즐거운 사라’의 외설성을 두고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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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왕국
사무실로 인터뷰를 하러 왔던 방송사의 피디가 있었다. 일이 끝난 후 차를 한잔 나누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의 특이한 성장과정을 들었다.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가난했던 육십년대 마음이 공허했던 서민들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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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의 늙은 변호사
전 대한변협회장이 요즈음은 ‘변호사의 사기화’라는 말을 했다. 늘어나는 변호사들이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더 사기꾼이 된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내게 자신의 로펌에 대해 &l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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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그만
남해의 바닷가 근처 집의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손에 든 호미로 밭의 풀을 파내던 던 육십대 말쯤의 여자가 싱긋 웃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그만, 이제 절대 무리하지 않아요. 나도 내 몸을 사랑해줘야지&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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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 부인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선배부부와 종종 만나곤 한다. 그 선배는 수십 년의 세월을 잘나가는 엘리트 검사로 또 청와대의 사정비서관으로 권력의 요직을 거쳤다. 고희의 나이가 된 지금도 역시 국책기관의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